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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사범 수기] 나는 ‘태권도 선교사, 거지왕’ [10]미국은 70년대 까지만 해도 아주 먼 나라
  • 신동기 사범
  • 승인 2008.06.30 16:12
  • 호수 597
  • 댓글 1

‘신 사범’이란 애칭이 고맙고 정갈스럽다.

내 인생의 3분의 2정도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면서 나의 머리는 빠지고 반백이 되어버렸다. 당시 나의 나이는 20대 초로 가장 어렸었고 대부분 나보다 10살 정도 위의 교포들과 어울려 지냈는데 대다수가 유학을 와서 눌러 살게 된 30대초의 노총각들이 많았었다.

신동기 사범.

한인 처녀들은 숫자도 적었지만 20대 초이니 나이 때문에 노총각들을 회피했지만 나는 20대 열혈총각이니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총각으로 인기가 좋아져 나의 콧대도 자연히 높아졌었다. 이제 나와 가깝던 30대들이 많이 타계하고 7, 80대가 되었으니 나도 많이 늙은 것 같다. 지금도 옛날 70년대 사람들을 만나면 나에게 신 사범이란 애칭을 불러주는 것이 고맙고 정갈스럽다.

1975년의 어느 날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사유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샌프란시스코에 혼자 조기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한 달 전쯤 소식이 끊어져 아들을 찾으러 왔는데 수소문하여 보니 중국계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었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찾아보았으나 전혀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많은 중국제자들이 있어 중국타운에 수소문 하여 보니 중국 갱단에 잡혀 있었다. 그래서 중국 갱단 두목을 찾아갔다. 사실은 이런 일은 매우 위험하고 내가 앞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계속 도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와도 관계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학생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중국 갱 두목을 찾아가 나는 정중하게 내가 한국 태권도 사범이라고 밝히고 한국 학생을 내어 달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며 이런 일에 관여하면 너도 위험하다고 위협적으로 나왔다. 나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FBI 요원들도 가르치고 있을 때라 내가 만약 너희들과 적이 된다면 너희들이 더 많이 손해 볼 수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조금 생각하더니 한국 학생을 내어 줄 테니 바로 미국을 떠나게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나는 그 조건을 지키겠다고 했고 조금 후 한국 학생을 부하가 데리고 왔는데 눈이 빨갛고 정신이 없는 걸 보니 마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학생 어머니에게 바로 미국을 떠나라고 하고 다시는 샌프란시스코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많은 조기 유학생들을 보았다. 대체적으로 보호자가 없는 조기 유학생들은 실패로 끝난다. 가장 민감한 나이인 10대의 중고등 학생들이 어떻게 혼자서 바르게 생활 할 수 있는지 가장 위험한 나이에 혼자 살게 한다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 온 후 1900년대 초에 하와이 수수밭 노동자로 온 한인 1세 이민자들을 여러분 만났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정정하신 분들이 꽤 많이 계셨다. 특히 중국 타운에 홀로 사시던 양주은 옹은 100세까지 사시고 80년대 말에 돌아가셨는데 도산 안창호 선생을 도와 홍사단을 조직하셨고 미국에서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신 분으로 이민, 독립운동의 산 증인으로 정부로부터 큰 훈장도 받으셨다.

한인들 행사가 있으면 노구를 이끌고 꼭 참석하셨는데 내가 주로 댁까지 모셔다 드리곤 하였다. 모셔다 드릴 때마다 나와는 꼭 한번 실랑이를 하셨다. 밤에 버스를 타고 꼭 혼자서 가시겠다고 사양하셨기 때문이었다. 좀 더 잘 해드렸어야 하는데 꼭 부보님께 효도 못한 것처럼 문득문득 후회가 된다.

지금은 미국이 가까운 나라가 되어 많은 한국 분들이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아주 먼 나라였다. 내가 미국에 온 후 72년 국기원이 생기고 태권도가 더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체계로 자리가 잡혀갔다. 미국도 태권도협회가 전국 조직으로 자리 잡고 미국 올림픽 위원회 안으로 들어가 학생들 특히 어린이들의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던 70년대는 거의 100%의 어른들 선호 운동이었는데 지금은 70~80%가 어린이 운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현지 사범들의 걱정은 태권도의 경기화가 성인인구를 줄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래 들어 품새 대회가 많이 생기고 전통 무술을 강조하는 사범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1976년 나는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에 화랑관을 내고 잠시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적이 있다. 유타 주는 몰몬교 본부가 있는 미국에서도 보수주의가 강한 지역이다. 솔트레이크는 미국에서 큰 도시 중의 하나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태권도가 발을 못 붙이고 있었다. 몇 명의 한국 사범이 잠깐씩 도장을 하였으나 1년을 못 넘기고 도장 문을 닫고 떠나버린 곳이었다.

이곳은 가라테 도장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태권도가 몰몬교와 화합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장을 열고 제일 먼저 한국인 몰몬교도들을 찾아 나섰다.

신동기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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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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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학성 2008-07-17 16:29:10

    신 사범님,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는 작가입니다. 혹시 양주은 옹 께서 운영 하시던 Uncle Sam's Restaurant의 주소를 아시는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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