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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매너의 국기원 시범단최창신의 국기원 시범단 러시아 방문기(2)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06.16 16:38
  • 호수 595
  • 댓글 0

얼마 전 국기원과 서울시협회가 불편한 관계에 놓여 서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때, 9단들로 구성된 최고고단자회는 이를 개탄하고 나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성명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예로부터 태권도는 충(忠 )과 더불어 예(禮)를 중시하여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왔다. 따라서 예는 태권도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큰 실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거의 반세기 전 필자가 태권도를 수련할 때에도 ‘태권도는 예(禮)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禮始禮終]’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사범은 물론 선배들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고 겨루기를 하는 상대에게조차 인사부터 나누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태권도계에서는 예의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 되어 버렸다. 예의나 의리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더 앞서 있고 예의 파괴의 정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게 어디 우리 태권도계만 탓할 일인가. 예(禮)의 파괴야말로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만연되어 있는 안타까운 사회현상이 아니던가.

국기원에는 65명의 시범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17명이 엄선되어 러시아를 다녀온 것이다.

시범단이 장도에 오르기 3일 전인 5월 8일 필자는 단장 자격으로 국기원 원장실에서 이들과 첫 대면을 했고 이어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기합소리, 가끔 흘러나오는 빠르고 경쾌한 배경음악, 몸을 던져 치고받는 격렬한 동작들. 국기원 경기장은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뚫고 남승현(南昇鉉) 감독의 질타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퍼부어졌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이려는 동작이 나오면 시범은 가치가 없어져. 실제상황처럼 해야 돼!”

지적을 받은 선수들의 태도가 특이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동작을 중단하고 부동자세를 취하면서 큰 소리로 “네, 시정하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선수라고는 하지만 가장 나이어린 이정만(李頂萬· 21)이 4단이고 생일이 좀 빠른 윤미정(尹美正)이 3단, 한 살 많은 김기수(金琪洙)가 4단일뿐 나머지는 모두 5단. 많은 선수들이 평소에는 각자 자기 동네의 도장에 나가 사범으로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 앞에서는 철저하게 예의를 지켰다.

기본적인 예절마저도 모두 내팽개쳐버린 대다수 젊은이들의 태도, 선후배 간의 소중한 예의를 이해타산의 제단 앞에 거리낌 없이 바쳐버리는 태권도계의 풍토를 생각할 때 시범단 단원들의 좋은 매너는 작지만 강한 감동의 물결이 되어 가슴을 적셨다. 귀하고 아름다운 예절의 싹이 젊은 선수들의 마음 속에 이렇듯 살아 있었구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윌리엄 워즈워드의 구절이 떠올라 오랫동안 샘물처럼 고여 있었다.

그후 열흘 이상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필자는 그들의 몸에 밴 철저한 ‘예의지킴’에 계속해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훈련이 끝나면 두 줄로 정렬하여 단장, 감독에게 인사했고 주장을 비롯, 고참들에게 따로 감사하다며 절을 했다. 후배들끼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며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출신학교가 서로 달라도 선후배 간의 질서를 철저하게 지켰다. 여자 고참 손상미(孫相美) 5단은 주장 박진수(朴鎭洙) 5단과 동갑인데도 항상 ‘주장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모셨다. “나이는 같아도 학년이 위일 뿐만 아니라 주장이니까 잘 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깐 헤어졌다가 만나도 단장, 감독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인사를 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하루를 묵었던 판숀나트 호텔. 정원사인 70대 중반 쯤의 노인이 필자에게 손짓발짓을 다 써가며 했던 말, “당신 선수들 정말 최고다. 어쩌면 그렇게 예의가 바르냐. 수시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였다.

러시아에 체류하는 동안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스승의 날을 맞은 시범단원들은 카네이션 꽃송이를 만들어서 단장과 감독에게 꽂아주는 성의를 보여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선수들끼리 서로를 아껴주는 것은 친형제나 다름없이 한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많은 짐을 서로 더 들려고 나선다. 얼굴 붉힐 일은 물론 잔소리도 필요 없고 항상 물흐르듯이 일이 진행되곤 했다.

주재곤(朱在坤) 5단.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사범으로 일한 경력이 있어 러시아 말을 잘한다. 그래서 그는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크고 작은 일에 늘 그가 불려 다녔다. 심지어 후배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도 작은 기념품을 구입할 때도 따라갔고 식사하다가도 자주 일어나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가끔 코피를 쏟았으나 그는 한 순간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의 어느 날. 호텔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막 끝냈을 때였다. 시범단의 막내 윤미정과 이정만이 미소를 지으며 필자와 감독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다가왔다.

뭔가 평상시와 다른 느낌이 들어 궁금해 하고 있는데 두 선수 모두 뒤에 감추고 있던 손을 내밀면서 빨간 카네이션을 꺼내 우리 두 사람의 가슴쪽 주머니에 꽂아 주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려니 ‘스승의 날’이란다. 생화를 구할 수 없어 윤미정이 손수 두개를 만들었다는 것. 러시아에 와서까지 스승의 날을 어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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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국기원 이사로, 이번 국기원 시범단의 단장을 맡아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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