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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국기원 시범단 러시아 방문기(1)잔인한 여정(旅程)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06.09 10:17
  • 호수 594
  • 댓글 1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까뮈처럼 여행에 공포라는 개념을 접목시켜 나름대로 특이한 판단기준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행은 일단 즐거운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 해방감, 새로운 체험들을 향한 보랏빛 기대감 등이 우리를 기쁨과 환희의 싱그러운 숲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일 터이다.

아무리 이국땅에 태권도를 널리 보급하고 국위를 선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가 우리에게 안겨져 있다 해도 러시아 방문 또한 여행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수 모두가 최고급 고난도 시범들을 실수 없이 잘 펼쳐 보여야 될 텐데’ 라는 부담감은 일단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우리는 한결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5월 11일 오후 2시 모스크바행 대한항공 923편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즐거운 나들이가 아니었다.

“모든 환희에는, 모든 쾌락에서와 같이 잔인성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심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의 대표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짚어낸 그 말이 여행기간 내내 우리를 촌철살인(寸鐵殺人), 끊임없이 뒤흔들 줄이야. 그 원인은 순전히 엄청난 양의 짐(격파용 송판 등) 때문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9시간 만에 비행기는 모스크바의 세레메치예보 제1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인 노보시비르스크로 가기 위해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세레메치예보 제2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5분밖에 걸리지 않을 입국수속에 꼭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짐을 찾아 통관수속을 밟는 일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격파용품과 비상식품이 사과궤짝 크기의 박스로 23개, 단원 20명이 각자 한 개 이상의 가방을 가지고 있어 우리 시범단 전체의 짐은 엄청난 분량이었다. 이를 일일이 손으로 들어 올려 검사를 받아야 했고, 십여대의 카트(손수레)에 나누어 실었다.

공항청사를 나서니 주 러시아 한국문화원의 안승환 팀장이 버스를 빌려 영접하긴 했으나 버스는 공항 주변의 사정 때문에 5백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해 있었다. 별 수 없이 카트를 밀며 차도와 인도가 뒤섞여 있는 꾸불꾸불한 길을 일렬로 이동했다. 경사진 길에서는 카트가 뒤집혀 박스와 가방들이 길바닥에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스타일은 이미 구겼으나 형편이 그런 걸 어쩌랴. 저 옛날 실크로드를 주름잡던 대상(隊商)의 행렬이라도 되는 듯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비행기를 국내선으로 바꿔 타는 데 4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모든 과정이 복잡했어도 조급하지는 않았다. 제1공항과 그 주변에서 이미 한 시간 반, 제2공항으로 이동하는 데 30분 이상을 허비했지만 그래도 느긋했다.

그러나 제2공항에서 본격적인 고달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관리를 왜 그렇게 하는지, 청사로부터 1백m쯤 떨어진 지점에서 우리는 타고 온 버스를 내려 짐을 꺼낸 다음 몇 사람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 많지 않은 카트 몇 개를 어렵사리 확보, 이를 끌고 나와 짐들을 옮겼다.

청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짐을 검사받게 되어 있어 또 그 많은 짐을 내려 일일이 검사대에 올려놓아야 했다. 이건 초벌 검사에 불과했다. 검사가 끝나고는 20m쯤 떨어진 본격적인 보안검사(사람과 짐을 모두 체크) 카운터까지 이번에는 손으로 들고 하나하나 옮겼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 저고리는 물론 구두를 벗고 허리띠까지 풀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체크인카운터로 이동. 결국 50개 가까이 되는 무거운 짐을 세 차례나 들었다 내렸다 하며 이동시킨 셈이었다.

이번에는 짐의 중량이 문제가 되었다. 그럴 줄 알았지. 우리는 이미 인천공항에서 우리의 대한항공을 타면서도 190만원의 초과중량분 운송료를 내지 않았던가. 그러니 모스크바에서야 사정이 더 나쁠 수밖에. 나영집(羅煐集) 주무와 러시아 국적기 에어로플로트 직원 간에 언성이 높아지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에어로플로트 측은 우리의 탑승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할 수 없이 150만원을 지불하고 겨우 탑승했는데 우리 때문에 비행기 출발시간이 10분 지연되고 말았다.

첫 방문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닷새 간의 일정을 마치고 두 번째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로 갈 때도 공항에서 똑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러시아로 출국하기 직전 선수들이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때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웠으나 여행을 하는 동안 과중한 짐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야 했다.

이미 한 차례의 시범을 마쳐 격파용품이 줄었다(5박스)고는 하나 아직 짐이 많기는 매한가지.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큰 가방들을 무리해서 들고 타려다가 공항 직원들과 전면전(?)까지 벌일 뻔했고 또 나영집 주무는 그쪽 책임자와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겨우 진정하여 2백 달러를 내고 조정, 힘겹게 탑승할 수 있었는데 기내에 들어가서야 왜 공항 직원들이 큰 가방을 들고 타지 못하게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비행기가 너무 작고 낡아 물리적으로 큰 짐은 도저히 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닷새 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갈 때는 마지막 남은 격파용품 5박스를 공항 근처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러시아에서의 여행에 좀 이골이 난 터라 미리 우리끼리 짐의 무게를 달아보고 초과중량분의 운송료도 계산, 버리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국기원은 시범단 해외파견시 이 격파용품의 제작, 운송 등을 좀 더 면밀히 계획하여 선수들에게 불필요한 고생을 덜어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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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국기원 이사로, 이번 국기원 시범단의 단장을 맡아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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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주 2008-06-18 16:51:42

    항상 단원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고..배려 해주신 최창신 단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구요..앞으로 태권도 발전에 많은 도움 부탁드리며 항상 건강하세요..저도 병원에서 치료잘 받을께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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