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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 (11)일단 제주도를 떠나며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05.26 16:18
  • 호수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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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청소년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하자. 보통사람들은 잠깐 구경하다가 그냥 지나간다. 상당히 결기(氣)가 있는 어른이라 해도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싸우지들 말라’고 소리나 지르고는 자리를 뜨는 게 상례(常例)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싸우는 청소년들 틈에 자기의 아들이나 조카가 끼어있을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살벌해도 지체하지 않고 싸움판에 끼어들어 편을 들거나 중재(仲裁)를 할 것이다.

왜 그럴까.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가족이 관계되어 있고 가족은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탐라의 땅을 걸으면서 이곳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순박함이 좋았고 야자수처럼 이국적인 나무들이 무성한 그 고장이 우리의 땅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잘 가꾸고 싶었다.

순전히 아끼는 마음에서 그들이 펼치는 일상의 틀을 헤집고 훈수를 두고 싶어졌다. 눈흘김을 당하고 더 나아가 욕을 먹더라도 한마디 하겠다. 먼저 몇 가지 사례.

첫 장면. 대정(大靜 )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 옆에 앉은 그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손님들의 자세는 실로 가관이었다. 중년 남녀 5명이 음식을 주문해 놓고 나누는 대화는 크지 않은 식당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었다.

복장이 좀 거친 것은 일하다 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싶어 괜찮은데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지. 바로 코앞에 앉아 있는 동료를 두고 마치 30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하듯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그들에게 이웃이란 개념은 없었다.

두 번째 장면. 서귀포에서 어느 해물전문식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역시 너무 시끄러워 돌아 나오려고 했다.

이번에는 등장인물이 여러 명이 아니고 50살 전후로 보이는 아주머니 단 한 명.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엄청나게 목청이 큰 데다 대화 내용이 살벌하여 마치 상대방이 잡히면 죽여 버릴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빈 그릇과 음식 찌꺼기를 치우면서 다른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놀부 마누라가 불쌍한 흥부 족치는 건 저리가라였다. 너무 오랫동안 떠들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밖에 나가서 통화하라’고 항의했더니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세 번째 장면은 제주공항. 탑승수속이 시작되는 지점에 제복차림의 아가씨 두 명이 배정되어 있었다. 탑승권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승객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단순작업이라 심심해서 그랬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길지는 않았으나 줄 뒤에 서서 보니 이미 수다가 시작돼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고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멀리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떠드는 그들의 대화 내용은 물론 업무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들에게 승객은 전혀 의미도 없고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진정한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장면들이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든 다반사처럼 펼쳐지고 있다. 육지의 대도시에서는 오히려 그 정도가 더 심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를 향해서만 쓴소리를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아울러 정말 훌륭한 관광지로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 건립된 서복기념관 전경. 제주도에는 실로 다양한 볼거리가 널려있다. 이러한 관광명소 이외에도 온화한 기후, 이국적인 풍광 등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이러한 관광자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력도 절대 필요하다. 친절함이나 세련된 접객문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서귀포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발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들렀다. “완전히 치료하려 하지 말고 임시방편의 조치만 해줄 수 없겠습니까? 여기서부터 계속해서 동쪽 해안선을 휘돌아 제주까지 가도록 손질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의사에게 부탁했다.

진찰을 마친 의사선생은 일단 치료를 해주면서 그만 걸을 것을 거듭 당부했다. “더 걷는 것은 무리입니다. 걷기도 힘들겠지만 만일 계속 걷게 되면 발바닥 전체가 떨어져나갈 위험성이 있으니 중단하십시오.”

아쉽지만 어찌하겠는가. 의사의 강한 지시에는 고집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서복 기념관에 가서 둘러본 다음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이동하여 상경했다. 발이 나으면 다시 서귀포에 가서 나머지 절반을 걸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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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196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정통 태권도인.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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