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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명 칼럼> 태권도 시범, 시범단을 뛰어 넘자
  •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 승인 2008.05.08 18:40
  • 호수 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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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태권도문화 위상은 시범문화를 통해 굳어졌다는 보편적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시범(示範) 개념에 대한 새삼스런 정의에 앞서, 이제 태권도문화예술의 차원에서 시범단이라는 이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시범이란 원래 학습지도의 한 방편으로 솔선 “모범을 보임”의 뜻을 지니고 있다.

태권도에서는 기술체계의 정수(精髓)를 간추려 일반인에게 시범을 보여 홍보에 기여하자는 것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60년대 초기 국내외를 막론하고 <태권도>의 이해를 통해 홍보와 수련생 모집이 주된 동기였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적어도 오늘에 ‘시범단’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진 이름이라는 것일 듯하다.

시범에 대한 장르적 개념의 첫 서장은 국기 태권도교본(1987)에서 유래하고 있다. 교본에 따르면, 기술체계 분류에서 첫째 태권도의 기본동작, 둘째 품새, 셋째 태권도의 겨루기, 넷째 태권도 시범 등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교본에서 시범 설명은 이러하다.

“태권도 시범이란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격파, 호신술 및 특기기술과 묘기 등을 구성하여 짧은 시간 내에 보여주는 태권도의 종합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범은 어디까지나 태권도를 소개하여 태권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태권도를 배우려는 의욕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2005:632).

교본에 따르면, 시범이 기술체계의 한 단원(장르)인지 아니면 종합예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태권도학과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시범은 분명 기술체계의 한 부분’으로의 인식이 지배적인 경향이다.

태권도 기술체계의 특성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신체비접촉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접촉행위가 그것이다. 앞의 것은 기본동작, 품새이고 뒤의 것은 겨루기, 격파 및 호신술 등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시범은 분명 그것의 ‘종합’ (체계)이라는 것이다. 장르이든간에 ‘시범’ 대신 ‘종합’ 개념이 합리적일 듯하다.

시범단의 효시는 국기원의 그것에 따른다. 국기원 시범단의 전통은 괄목하달 수 있는 눈부신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타이거즈 시범단의 그것도 빠트릴 수 없는 위상이다. KTA(대한태권도협회), WTF(세계태권도연맹)에서도 근자에 독자적 시범단 창단을 서둘고 있다. 누가 그것에 회자(膾炙) 또는 화두를 삼을 것인가!

동양적 철학 개념의 중심은 태극(太極), 도(道), 기(氣) 이 셋인데, 그런 개념이 태권도 이름에서부터 품새, 기합 등 학습체계에서도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태권도에서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봄직하다. 더불어 시범 용어/이름에 대한 현세적 성찰도 따라야할 듯하다.

올림픽 태권도종목으로서의 위상에 시범이라는 이름은 변화의 시대에 적어도 걸맞지 않고 진취적이지 않다. 기술체계측면에서 태권도의 시범은 태권도의 ‘종합’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태권도 시범단이라는 이름은 태권도 (종합)‘공연단’으로의 변화로, 성숙한 문화의 모습을 재창출할 수 있을 때 닫힌 사유의 범주에서 그 경계를 단박 뛰어넘을 수 있을 듯싶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연상되는 것이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 ‘시범’종목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전시’종목이라는 굴레에서 이제는 당당히 정식종목으로서 태권도는 2012 런던올림픽 이후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힘차게 내딛어야할 때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위해 태권도인의 중지가 아쉽다!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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