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대한태권도협회(KTA) 제22대 회장으로 추대된 김정길씨(당시 열린우리당 중앙상임위원)는  “그동안 내분으로 추락한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이어 “결재만 하는 회장은 하지 않겠다. 새로운 태권도 문화를 만들고  경영 마인드도 도입하겠다. 신뢰받는 태권도계를 조성하면 언제든지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4년 2개월 여 만에 그는 임기(8개월)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사퇴했다. 새 정부와 갈등을 빚어 대한체육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 KTA 회장직 사퇴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올 초부터 그는 KTA 회장직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김정길 KTA 회장이 지난해 자이툰부대를 방문, 태권도용품을 기증하고 부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정길 前 회장의 공(功)

4년 전, 김정길 전 회장은 ‘여권의 실세’라는 배경을 안고 KTA 회장이 됐다. 따라서 KTA 안팎에선 태권도공원 사업과 KTA 사단법인화 등 태권도계 현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각 파벌로 어수선한 태권도계를 안정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회장 수행 초창기, 주위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김 회장 체제 이후 KTA가 안정되고 사단법인이 실현되는 등 순항을 하고 있다며 반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2005년 코리아오픈태권도대회를 신설하고 2억 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의 진가가 반영됐다는 게 KTA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 전 회장은 KTA 회장직 수행 과정에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로 지난 2005년 7월 싱가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2016년 런던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잔류했던 일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태권도 퇴출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 유럽의 IOC 위원들을 만나 태권도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시 태권도는 가라테의 공세에 밀려 고전했지만 2-3표차로 올림픽에서 살아남았다. 그때 방심하지 않고 IOC 위원들을 만나 열심히 지지를 부탁한 일이 가장 보람된다”고 말했다.

■ 김정길 전 회장의 과(過)

KTA 회장 취임 당시 “결재만 하는 회장은 하지 않겠다”며 다부진 의욕을 보였던 김 전 회장은 2005년 2월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되면서 KTA 회장 업무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KTA의 현안을 전무와 기획이사에게 맡기고 ‘결재만 하는 회장’으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임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공약은 대부분 실행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인간적인 풍모와 친근함은 좋지만, 당초 기대보다 회장직 수행이 미진하다”는 지적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택견과 공수도가 대한체육회 정식 경기가맹단체가 되자 “KTA 회장으로서 무엇을 했느냐”며 퇴진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승부조작 의혹 파문’이 터지자 임춘길 전무의 사표를 수리하고 태권도계 자정운동을 주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돼 그의 위상이 큰 타격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결연한 의지로 △KTA 운영, 경기 진행, 경기력 향상 등에 대한 책임과 권한 분권화 △공정한 판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심판들에 대한 고과평가제 실시 △명확히 잘못된 판정은 번복할 수 있도록 소청제도 현실화 △회장 선출제도 개선 등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러한 조치와 노력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 나갈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중도에 사퇴함에 따라 헛말이 되고 말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권도는 우리나라 국기(國技)이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태권도 경기가 재미있어야 하는데, 실무진들이 아직도 개선 방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과의 복합적인 관계가 작용하겠지만, 회장이 어떤 현안에 대해 방향을 설정해 주면 그 나머지는 실무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4년 2개월 동안 KTA 수장(首長)으로서 활동한 그의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서성원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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