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조류독감이 올 들어 다시 전국에 걸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엄중식 교수

조류독감은 말 그대로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조류(새)에 전파되는 전염병으로 원인 병원체가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동일하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6종류의 H 혈청형과 9종류의 N 혈청형을 갖고 있어서 이 두 가지 혈청형의 조합에 따라 모두 144가지의 바이러스 혈청형이 존재할 수 있다. 이 중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H3N2 혈청형이고 조류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것은 H5N1 혈청형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병원성(病原性)에 따라 고(高)병원성·약(弱)병원성·비(非)병원성 등 세 종류로 구별하는데 최근 발생한 조류독감은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많은 가금류가 폐사되고 발생지역의 가금류는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살처분되고 있어 축산농가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지 않던 H5N1 혈청형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감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경우 1997년 홍콩에서 6명이 감염되어 사망하였고 2004년 베트남에서는 16명이 감염되어 사망한 이후로 소수이지만 꾸준히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사망하는 사례가 보고되어 동남아에서 조류인플루엔자는 이제 풍토병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1997년 홍콩 발병사태 이후 줄곧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대참사에 대해 경고해왔는데 10년 이상 지나도록 죽은 사람이 100명이 안 되고 대유행을 여전히 예언만하고 있어 세계보건기구가 H5N1의 위협을 과장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의 ‘조류인플루엔자 대역병 경보 단계’를 보면 지구에는 현재 6단계 중 3단계의 경보가 내려져 있다. 이 단계는 “새로운 바이러스 유형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 대 인간의 전염이 증가하는 4단계와 그 양상이 현저해지는 5단계를 거쳐 6단계는 대유행 상태로 돌입하는 것을 말한다.

2004년 8월 태국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닭이 죽기 시작했고 닭과 접촉이 잦았던 11세 소녀가 피를 토하며 폐렴 말기 증상을 보인 뒤 사망하였고 소녀를 간호하던 어머니가 2주일 후 사망하였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이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 감염을 일으킨 것이다. 1997년 이 바이러스가 홍콩의 농장과 가금류 시장에서 대량 발병한 지 7년만의 일이다. 이 사건은 인류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 조류독감의 대유행으로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는 단계에 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4월 방역작업에 동원된 군인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의심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걸린 것으로 확진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효과적인 조류독감의 예방을 위해서는 가금류에서 조류독감이 의심되거나 발생하면 즉시 방역기관에 신고해야 하고 발생지역에서 사육하는 가금류를 다른 지역으로 판매하거나 이동 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보건당국의 지시에 따라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감염예방을 위해 항바이러스 제제를 복용하고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 등 조류독감 증상이 발생하는지 살펴야 한다.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와 접촉하지 않는 경우라도 손을 자주 씻고 실내의 환기를 잘 시키는 것이 좋다.

한림대의료원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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