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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의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6)관광 진흥과 프로 정신
  • 최창신 고문
  • 승인 2008.04.17 18:21
  • 호수 588
  • 댓글 0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시청 직원의 장난으로 관광지 중문에서 발생한 단수(斷水) 사건’은 지난 일을 떠올리게 했다.

최창신 상임고문

10년쯤 전 월드컵축구대회 준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절 서귀포를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 대회 준비와 관련이 있는 핵심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던 중 나는 당초 예정에도 없고 의제(議題)와도 상관없는 질책성 연설(?)을 해버리고 말았다. 즉흥연설의 주제는 ‘월드컵 개최와 제주도의 발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서귀포시가 월드컵대회에 동참, 배정되는 경기를 잘 치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한시적인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뿐, 더 중요한 점은 월드컵대회를 제주 발전과 연계시키는 슬기와 지속적인 노력이다.

제주도가 잘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관광과 농산물(감귤 등 밭작물).

멋지게 해내려면 꼭 필요한 게 ‘프로 정신’이다. 대충 판을 벌려 놓고 잘 되기를 바란다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이 바뀌고 모든 사람이 변해야’ 한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예를 들어 보겠다. 우선 ‘서부 산업도로’라는 명칭. 관광지에 산업도로라니? 제주도에 얼마나 공업도시들이 많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나. 관광 발전을 저해하는 명칭이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 살벌하고 삭막할 것 같은 마을들이 연상되는 곳에 무슨 관광을 가겠나.

길 이름을 영어로는 뭐라고 번역하나? ‘Western Industrial Road?’ ‘서양식 공업단지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업무상의 목적이 아니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리겠지만, 어쩌다 외국인이 택시를 타고 ‘웨스턴 인더스트리얼 로드로 갑시다’ 하면 우리 기사 아저씨들은 금방 알아듣겠나?

또 하나. ‘중문 관광단지.’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도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이름에서는 벌써 볼 게 없는 인위적인 관광지라는 느낌이 풀풀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작명하기로 든다면 중국음식점을 잘 차려놓고 ‘대려도(大麗都)’ 또는 취영루(聚英樓)‘ 하는 그럴듯한 이름 대신 ’중국음식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집‘이라고 간판을 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얼마나 유치한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 보겠다. ‘서부산업도로’ 대신 ‘하르방길’은 어떤가? 탐라국 고유의 신비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중문 관광단지’ 대신 ‘옵서예 마을’은 어떤가?

한두 가지의 예가 중요한 건 아니다. 모든 사안을 합목적적으로 철저하고 깔끔하게 챙기겠다는 ‘프로 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관광만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즉흥연설을 했던 그 회의 이후 제주도 지역신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기고한 바 있고 당시 강상주 시장의 요청에 따라 서귀포시 유지들에게 관광 및 제주도 발전에 관한 소견을 특강형식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러 다시 탐라의 품에 안겼다. 우직하게 걸어서 일주하기 위해.

조금씩 이동할 때마다 지도(2006년 1월·성지문화사)를 유심히 살피던 중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문제를 삼았던 ‘서부 산업도로’의 명칭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반가웠다. 물론 나 때문에 변경된 건 아니겠지만 일조는 했을 것 같아 흐뭇했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하얀 모습을 하고 있는 한라산. 서귀포 쪽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차분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 일원에는 관광명소가 될 만한 요인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러한 요인들을 잘 살리고 유기적으로 관리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인 바, 이에는 투철한 프로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아, 그러나 바뀐 이름은 ‘서부 관광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원색적이고 행정 테이블의 냄새가 진하고, 속이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기왕 고칠 바에는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어(그 자체를 이벤트로 해도 되겠네) 좀 더 잘 지을 일이지.

아쉽다. 사견(私見)이지만 ‘하르방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월드컵길(서귀포에서 대회가 열렸으니까)로 튀어 나가든지, 아니면 ’불로장생길‘로 하든지.

‘불로장생길’ 하면 일단 누구나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무슨 사연이 있나? 하고. ‘불로장생’이라는 말이 좀 진부하거나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거든 ‘불로초로(不老草路)’라 하여 뜻과 발음을 모두 살려보는 방법도 있었겠다. 이런 식의 작명에는 재미있고 그럴듯한 고사(故事)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소재가 있음에도 왜 살려내지 못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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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상임고문

- 현 국기원 이사. 1960년대 선수생활을 한 정통 태권도인.

언론인(서울신문) 출신으로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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