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창 처장이 잘못을 했으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처벌할 수 있어도 함부로 (이 처장을) 뽑아낼 수 없다. 인사권은 원장의 고유권한이다. 이근창을 사무처장으로 발령하는데 이사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지난 14일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열린 국기원 정기이사회에서 엄운규 원장은 이근창 사무처장을 두둔했다.

지난해 12월 잠실롯데호텔에서 열린 태권도인의 밤 행사에서 엄운규 원장(오른쪽)이 이근창 당시 교학처장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 이승완 이사가 ‘8대 비리 의혹’으로 중징계를 받은 이 처장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학처장에서 사무처장이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자 엄 원장은 “(태권도한마당을 미국에서 개최하는 등 각종 사업이 많아)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실무자가 필요해 이근창 교학처장을 사무국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운영이사회에서 사무국 체제를 사무처로 바꾸자고 결의해 기구를 개편하고 사무처장으로 발령을 냈다. 모두 1급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보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처장 발령 문제를 더 이상 문제삼지 말라는 쐐기성 발언이었다. 이것은 엄 원장이 이 처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한 신뢰’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엄 원장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의 한 지하 커피숍에서 또 한번 이 처장에게 힘을 보태줬다. 이 자리에는 이 처장과 장호범 씨(전 서울시태권도협회 임원)가 먼저 와서 엄 원장을 기다렸다.

이 자리에서 이 처장은 장호범씨가 임윤택 서울시태권도협회 상임부회장의 비리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국기원 직원 채용 뒷거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리에 뒤늦게 나타난 엄 원장은 장씨에게 “요즘 이 처장이 많이 힘드니 도와줘라. 이 처장의 말이 곧 내 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엄 원장이 임윤택 부회장을 ‘제거’하려는 이 처장에게 실질적으로 힘을 보태준 사례라 할만하다. (양심선언을 한 장씨는 엄 원장과 나눈 대화를 녹취했다며 곧 대화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엄 원장은 이 처장을 두텁게 신뢰하며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능력있는 부하 직원 개념을 떠나 ‘정치적 동반자’로 이 처장을 대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처장은 2004년 엄 원장의 두터운 신망을 등에 업고 기획조정실장이 됐다. 이것은 두 사람이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엄 원장의 총애(寵愛) 속에  40세 초반의 나이로 실세가 된 이 처장은 그 후 엄 원장이 퇴진 압력과 정치적 외압으로 곤욕을 치를 때마다 최일선에서 그를 보필하고 방어하는 ‘책사(策士)’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005년 부정단증 문제로 엄 원장이 수차례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이 처장은 누구보다도 엄 원장의 안위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온갖 지략을 짜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엄 원장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각종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충직한 부하 직원’이자 ‘정치적 동반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충직한 이 처장에 대해 엄 원장이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처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고, 문제가 좀 있을지라도 원장으로서 이 처장의 ‘든든한 방해막이’가 되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엄 원장과 이 처장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 주위에서는 “엄 원장이 국기원을 떠나면 이 처장도 국기원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 처장은 엄 원장 이후에도 국기원의 실권자로 남아 있기 위해 부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제도권 안팎에서는 이 처장이 송봉섭 부원장을 원장으로 앉혀 놓고 실권자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성원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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