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30년 전에는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와 레슬링의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종격투기 시합이 있었다. 알리는 서서 맴돌았고 이노키는 누워서 발로 걸어서 넘어뜨리려 했다. 결국 세기의 대결은 싱거운 무승부로 끝났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이종격투기 대회가 있어 왔지만 지금의 세계 3대 격투기 이벤트인 프라이드FC(1997년 창설)나 K1(1993년), UFC(1993년)처럼 성공적이지 못했다. 케이블TV와 인터넷의 보급에 힘입어 출현한 잔인하면서 화끈한 격투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한 신종 인기문화상품이 이종격투기이다. 다혈질의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 문화의 주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문제는 우리 태권도이다. 이종격투기로 인해 태권도의 미래는 경기면이나 도장 경영면에서 무척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에서는 다른 무술에 대한 태권도의 경쟁력이 큰 폭으로 떨어질 전망이 크다. 일반인들은 이종격투기와 태권도를 단순, 평면적으로 비교하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 태권도 경기가 박진감면에서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는데 이종격투기에 비한다면 더더욱 흥미가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태권도는 격투기나 호신술로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견해들이 만연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종격투기는 태권도의 위상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차후 상세히 거론하기로 한다.

태권도에 분명 악재로 작용할 이종격투기에 관한 다음 다섯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 이종격투기는 현재 전세계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는 이종격투기는 과격성, 폭력성, 비교육성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대세로 정착되는 추세다. 불과 십 수년 만에 이종격투기는 일본과 미국은 물론 네덜란드, 러시아, 브라질, 한국에 보급되어 인기 스포츠 경기로 정착했다.

프라이드 주관사인 DSE는 최근 미국 폭스TV와 중계 계약을 맺음으로써 세계적 확산이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폭스스포츠는 "미국의 21개 주에 주 5일씩 프라이드 경기를 방송하게 되며 장차 효도르, 크로캅 등은 타이거 우즈에 버금가는 대형 스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국내외 이종격투기의 파급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1년 케이블방송사인 KBS스카이가 본격 방영하기 시작한 이래 XTM, Xsports MBC ESPN 등 케이블사들이 앞다투어 방영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사내를 가린다며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에 부응하는 이종격투기 대회는 국내만 해도 수 많은 열혈팬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종격투기는 이삼십대 청년층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고 초등학생이나 여성, 장년층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 1월 표도르의 방문에 이어 6월에는 주짓수의 대가 400전 무패의 전설적인 격투가 힉슨그레이시가 한국을 찾기로 하여 한층 열기가 후끈해질 전망이다.

세 번째, 국내외 보급에 힘입어 이종격투기와 효과적 격투(제압) 기술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가 증대된다.

이종격투기 대회는 복싱, 무에타이, 레슬링, 주짓수, 유도 등 각 무술 전문가들의 한판 대결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어느 무술이 우월한지를 판단하는 근거를 갖게 한다.

아울러 생소한 무술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지게 된다. 예컨대 브라질리안 주짓수가 처음 이종격투기에 등장했을 때는 다들 생소했다. 하지만 TV를 통해 눈으로 그 위력을 직접 확인한 지금에 와서는 최강의 무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반인들에게 한국에는 태권도가 있고, 중국엔 쿵푸가 있어서 이종격투기에도 강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앞으로는 평가절하될 조짐이 보인다.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전통 무예들은 실전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수양의 수단, 스포츠 경기나 공연, 건강 운동, 아동체육으로 변모하여 실전에는 약하다는 평이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계속>

김영선 전문위원(연세대 태권도 전문강사)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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