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팬암태권도연맹 회장 최지호, 그는 누구인가?

세계태권도연맹(WTF)에는 5개의 지역연맹이 있다.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아우르며 42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는 팬암태권도연맹(Pan American Taekwondo Union, 이하 팬암연맹)의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팬암연맹을 남다른 카리스마로 이끌어왔던 사람이 고(故) 박차석 회장. 박차석 회장이 지난해 3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한 후 팬암연맹이 혼란에 빠졌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 12월 7일 팬암연맹은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고 다시금 제자리를 찾았다. 이 때 팬암연맹이 선택한 인물이 바로 최지호 회장(49)이다.

최지호 회장은 올해 우리나이로 쉰.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만큼 일반적으로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태권도계에서는 아직 새파랗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철저한 태권도계에서 이제 막 50살이 된 최지호 회장은 여러가지로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태권도계의 뉴 리더 최지호 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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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호 팬암연맹 회장.

최지호 회장을 처음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도착한 기자는 호텔 로비에서 최 회장을 두리번 거리며 찾았다. 초면이었기 때문에 사진으로 본 얼굴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호텔 로비에서 특히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하늘색 가디건을 입은 최지호 회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어려서(!) 태권도계에서 말을 좀 들을 텐데, 너무 어려 보이게 입고 다니는 것 아닐까?

“(웃으며)그런 소리 사실 들을 때가 있습니다. 워낙 높으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그래서 더 예의도 지키고 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팬암연맹 회장이라는 직함만 믿고 예의없이 행동하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겠지요.”

사실 최 회장은 최연소 기록갱신의 사나이다.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 뉴저지주 태권도협회장, 팬암연맹 심판 부위원장, 경기위원장, 기술위원장을 거쳐 사무국장까지 거의 모든 직함에서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 절정은 역시 49세의 ‘전 아메리카 대륙 태권도연맹 회장’이라는 타이틀 일 것이다. 최 회장에게는 차세대 주자라는 말이 이미 늦어버렸다. 최 회장은 차세대 주자가 아니라 현재 가장 유력한 주자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미국을 건너간 것은 1980년. 최 회장의 부친은 한때 이름을 날렸던 유명 아나운서였는데 1980년에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최 회장은 미국에서 권재화 사범, 박동근 사범 아래서 태권도를 수련했다.

태권도는 태권도대로 계속 수련했지만, 직업으로 생각한 것은 의사였다. 그래서 진학한 곳이 명문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이다.

그러면서 최 회장은 자신의 학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돈을 지원받아 태권도장을 열고 태권도를 지도하게 된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태권도장의 관원이 늘면서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최 회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커다란 결정을 내린다. 바로 의학공부를 포기한 것이다. 동양계 이민자로서 의사가 되어 미국인들과 경쟁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태권도를 통해 미국에서 큰 뜻을 펴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쳤다. 최 회장은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미국 명문대 의대에 진학한 아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전망이 불확실한 태권도 사범을 하겠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중에야 아버지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추진하는 최 회장의 일면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최지호 회장.

최 회장의 이력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본인이 미국 명문 의과대학생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미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현재 프린스턴대학 체육교육학부에서 태권도 과목을 정식으로 지도하고 있다.

최 회장이 미국 최고의 수재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동아리 수준에서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은 최 회장은 프린스턴측이 제시한 소액의 금액을 받지 않고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그 돈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받지 않고, 나중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1년간 무료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난 후 이를 테면 재계약에서 프린스턴이 제시한 금액과 최 회장이 제시한 금액은 차이가 너무 컸다. 결국 타협을 하지 못한 양측은 태권도 강의를 포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자신들이 재미있고 유익하게 배운 태권도 강의가 없어지자 프린스턴대학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항의 시위가 이어졌고, 대학 측은 최 회장을 찾았다. 물론 전에 제시했던 금액보다 많아진 금액을 최 회장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최 회장의 대답은 ‘NO’였다. 최 회장은 자신이 처음 제시했던 금액에서 한푼도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들어왔던 프린스턴은 최 회장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아쉬운 것은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대학 측에 ‘최 회장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대학 측은 최 회장을 찾아 타협을 요구했다.

타협은 원만하지 못했다. 협상 때마다 프린스턴은 높아진 강의료를 제시했지만, 최 회장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프린스턴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맨 처음 최 회장이 제시한 금액으로 강의료는 결정이 났고, 최 회장의 강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린스턴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던 최 회장에게 또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지도하게 된 것이다.

1998년 프린스턴대 학생들을 이끌고 미국 대학태권도대회에 참가한 최 회장은 미 육사 태권도팀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말이 태권도팀이었을 뿐 실력이나 체계면에서 미국 태권도팀은 엉망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미 육사에서는 제대로 된 태권도사범에 의한 태권도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미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미 육사생도들의 엉터리 태권도 실력을 보다못한 최 회장은 원한다면 자신이 태권도를 가르쳐 주겠노라고 육사생을 이끌고 온 책임자에게 제안했고 미 육사측은 이 제안에 반색을 했다.

미 육사가 있는 뉴욕주는 최 회장이 거주하는 뉴저지 주의 북쪽에 인접해 있다. 덕분에 최 회장으로서는 프린스턴과 미 육사 두 곳을 모두 지도하는 것이 가능했다.

미 육사 태권도팀은 최 회장이 온지 1년 만에 전국 태권도대회에서 5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결국 정식 선수단까지 발족하게 된다. 현재 20명으로 구성된 미 육사 태권도팀은 학교에서 최대의 신임과 지원을 받고 있다.

이렇듯 뉴저지주와 대학을 중심으로 태권도를 지도해오던 최 회장은 1993년에 있었던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박차석 회장을 만나게된다.

최 회장을 눈여겨보던 박차석 회장은 최 회장을 중용해 팬암연맹 내에서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결국 최 회장은 심판부위원장-경기위원장-기술위원장을 거쳐 사무국장까지 팬암연맹의 주요 업무를 거치며 핵심인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박차석 회장의 유고에 따른 보궐선거 과정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팬암연맹 내에서 일을 도맡아해오던 최 회장을 회원들은 인정하고 있었고, 결국 작년 12월 거대조직 팬암태권도연맹의 회장에 취임하며 태권도계의 기린아로 떠오르게 된다.

최지호 회장.

최 회장이 선거에서 제시한 공약은 ‘상호협력적인 연맹’과 ‘능력위주의 동등한 기회 제공’이다.

구체적으로 최 회장이 계획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찾아갈 수 있는 권한을 소속 회원국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올림픽 솔리다리티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몰라서 못 받아갈 뿐이지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지원을 받을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임기는 오는 10월까지다. 팬암연맹은 이때 새로운 회장선거를 하게된다. 최 회장은 자신감에 넘쳤다.

“작년 선거 때에 남은 임기를 포함해서 새로운 임기까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도 나왔었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일을 해서 올바른 평가를 받고 다시 회장에 선출이 되겠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평가를 통한 인정을 받아야 다음에 일을 할 때에도 힘이 실리는 것이니까요.”

세대교체가 더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태권도계. 젊은 사람들이 과연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최 회장의 행보가 앞으로 더 주목받는 이유다.

박성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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