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성읍 민속촌을 돌아본 수련생들은 기금을 모아서 민속촌 보존 성금을 내기도 했다.

13일 오후 3시경 우리 일행은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인원파악을 한 후,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부산 태종대와 용두산 구경대신 관장님이 자라난 고향을 보고 싶어요!”

수련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우리는 갑자기 관광 코스를 바꿨다.

꿈같은 이야기다. 미국에서 키운 제자들을 데리고 나는 고향 땅으로 달리고 있었다.

들녘에 핀 노란 호박꽃들과 밀짚모자를 눌러쓴 농부들이 여태 내 곁에 있었던 듯 수수한 친근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약 30분 후, 우리는 대통령 생기가 있는 봉화 마을에 잠시 들렀다. 푹푹 찌는 무더위, 돼지우리 냄새로 숨이 막힐 듯 한 좁은 골목을 약 80미터 가량 걸어서 단감나무 가지가 늘어진 초라한 두칸 집에 도착했다. 처마 끝 저만치 보이는 봉하산 봉우리에 우뚝 솟은 돌 바위의 기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바삐 또 버스에 올랐다. 시내를 들어서면서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저쪽 철길 옆에 일제시대 때 공출로 받은 목화를 저장했던 빈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한국동란이 끝난 후에 도장으로 변신했어요. 내가 처음으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곳이지요.”

기념 촬영 후 일단 부산으로 돌아갔다가 경주를 찾았다.

소낙비를 맞으면서 석굴암 구경을 하고 국립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많은 진열품 중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태권 자세를 취한 석상이 수련생들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잠시 후, 우리는 태권도의 원조 화랑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 '화랑의 집'이라 쓴 대문을 벗어나면서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0여 개의 벽돌 계단 끝에 버텨 선 누각이 우리를 억누르듯 위압했다. 계단 양쪽으로 축구장 크기의 공간을 채운 정원수들은 수련 새들의 정신을 말해 주듯 정연했다. 중고등학생 층이 여기 와서 특별 수련을 한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9시 좀 지나서 우리는 속초로 향하는 동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산길 도로변에 코스모스, 따리아, 채송화 등 고운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계곡과 계곡을 잇는 태백산 줄기를 타고 숨차게 달리는 버스 차창 아래 구비 구비 밀려온 파도가 기암절벽에 부딪고 하얗게 물거품을 토했다.

6시 반경, 설악파크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다음날, 우리는 여느 때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났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을 치솟듯 산 중턱에 내렸다. 바위 산비탈을 타고 비틀 걸음으로 정상을 향했다. 흰 구름 삼라만상이 발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거센 바람에 중심을 가누기 어려웠다. 태극기가 세차가 펄럭이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하산해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10분정도 걸어서 낙산사로 들어갔다. 1,300년 전 신라 의장왕 시절 의상에 의해 세워졌다. 일주문과 홍애문을 지나 까만 대나무 밭이 인상적이었다. 의상대를 지나 신생봉에 오르니, 커다란 돌부처가 우리를 위압했다. 해성완음상이라 부르는 이 돌부처는 동양에서 제일 큰 것이라 한다. 그런데, 다음해에 이 국보들은 아깝게도 산불에 타버렸다 한다.
정오가 가까워서 우리는 모두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4시경에 서울에 도착하니, 또 소나기 쏟아졌다.

역삼동 좁은 언덕길을 버스가 비집듯 돌아서 국기원에 도착했다. 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비를 파하면서 이리 저리 몰려다녔다. 오후 4시에 학생부 지역선수 선발대회를 이미 끝낸 대강당에는 아직도 선수들이 그룹 그룹으로 모여 있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서 구르고 뛰어보기도 했다. 당장 도복으로 갈아입고 싶은 마음들이지만 오늘은 너무 늦은 시간, 내일도 공휴일인 제헌절이라 아쉬움만 남겼다.

태권도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사진들을 찍었다. 발전에 이바지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 나는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낙수 물을 피하면서 판매점으로 갔다. 도복, 셔츠, 운동구 및 기념품 등을 사고, 강남 르네상스 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2004년 7월 17일 아침, 장마 비는 계속됐다.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우리 민족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어떻게 한반도에 터를 잡았고, 생업, 공예, 의식주 등 어떤 모습으로 삶을 시작했는지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제자들에게 값진 산교육을 시켰다.

"관장님, 원더풀 코리아!"

<이번 호를 끝으로 곽병열 사범의 수기 '징검다리 건너서'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국내에는 도장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개발하고 배우려는 열정들이 뜨겁습니다. 새해에는 이런 태권도계의 욕구에 부응하는 글을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곽병열 사범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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