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부 활극에서 보듯 두 발을 약간 벌리고 “너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라며 위협했다.

그때 저쪽 앞문에서 철그렁거리며 바삐 걷는 구도소리가 들리고 나를 에워싼 젊은이들은 잽싸게 흩어졌다. 누가 이미 경찰에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새해를 맞으면서 이 일자리를 그만 두고 말았다. 이 지역 인구 중에 삼분의 일이 흑인들인데, 많은 수가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연말에 수련생들로부터 몇 개의 선물을 받았다. 그 중에는 목이긴 한국산 스웨터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선물이 한국 상품이라는 자부심에 다른 수련생들에게 자랑도 했다. 그런데 한 번 세탁을 하고 난 후에 문제가 생겼다. 목 부분이 늘어나서 사람 몸통 하나가 들어갈 만큼 커져버렸다. 입을 수도 버릴 수도 없게 되었는데 “사범님 그 스웨터 어떻습니까? 하고 가끔 물어 오면 ”응....좋아! 나 그걸 무지 아끼고 있어.“라고 얼버무렸다.

입자니 국산품 망신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나는 저질 선물을 받고도 오히려 미안해서 쩔쩔매야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예를 들어 시급한 수출 품질개선에 대한 글을 몇 자 적어서 한국 모 신문사에 보냈다. 70년대 초 모국의 수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내 작은 바램이었다.

한 달쯤 지나서 몇 통의 이름 모를 편지들이 한국에서 왔다. 그중 어떤 이는 신문기사를 오려서 동봉해 주기도 했다.

“저질 국산품 교포 망신”이라는 제목 아래 내 주소와 편지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식당에서 쓰는 반짝 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스푼과 포크에 “Made In Korea”라고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수련생들과 같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일부러 스푼 손잡이를 뒤집어 보이면서 “야, 이것 봐라, 한국서 만든 거야!” 라며 우쭐해하곤 했다. 미국산 고기 덩어리를 먹었는데도 내 진한 피는 아직 그대로였나 보다.

사실은 그 당시만 해도 많은 젊은 미국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지도상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해 봄 빌이라는 학생으로부터 조그맣고 하얀 반 스포츠용 중고 자동차 ‘케메로’를 한대 샀다. 내게 아파트보다 더 필요한 것이 교통수단이었다. 매일 같이 윤이 나도록 닦고 시간만 나면 몰고 나가고 싶었다. 이곳에 와서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개인소유’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애착을 느꼈다.

그랬는데 비오는 날 도로에 고인물이 튀어 오르기만 하면 엔진이 꺼지고는 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젖은 엔진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상황은 정말 초초하고 짜증스러웠다. 정비소에 끌고 가서 상의한 결과 원래 이 모델 자동차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했다.

이런 결점을 알면서도 내게 차를 판 그 사람이 나는 무척 원망스러웠다.

늦은 봄 나는 레에딩에서 개최하는 북동부 가라테 대회에 시범 초대를 받았다. 나는 20여명의 선수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떠나 1시간 반 걸려서 대회장에 도착했다.

세계 복싱 헤비급 챔피언 ‘캐시어스 클레이’(그 후 ‘모하메트 알리’로 개명)도 특별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10시쯤 개막식에 이어 세 가지의 무술 시범들이 끝나고 마지막 시범을 내가 하게 되었다. 장애물격파, 수도격파와 정신 통일 시범 등을 하고 700여명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2달 후 이 사실은 “Black Belt” 잡지에 크게 보도되었다.

> 다음호에 계속

곽병열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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