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여러 가지 인연으로 경찰학교 및 특수경찰을 대상으로 시범을 하게 되는데, 어쨌든 경찰과의 인연이 나의 체류허가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해주었다. 시범을 보인 후에 인정이 될 때까지 무보수로 일하기로 하고 시범날짜를 정하였다.

그러나 격파물과 시범 시 보조해줄 학생이 없어서 경찰들이 잡고 시범을 하기로 했다. 격파 시 보조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해주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격파물이 흔들려 의외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을 하다 보니 마지막 격파 시에 기와장이 나가지 않고 정권이 부서져 눈에서는 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닌가.

고통을 참기 어려웠지만 꾹 참고 시범을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을 앓아누워 있던 일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 쪽 팔은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 외롭고 처량한 신세가 되어 고향과 집 생각밖에 나지 않아 눈물로 하염없이 나의 얼굴을 적시며 한없이 울어도 보았다.

지하실 단칸방에 자전거 한 대. 자전거는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누가 훔쳐갈까 노심초사 얼마나 귀중하게 다루었는지 모른다. 또 얼마 지나 조그만 돌돌이 오토바이 한 대를 누가 빌려주어 오토바이가 나의 유일한 자가용이 되었다.

조금씩 발전이 있었지만 어두워지면 집 생각 , 고향생각 수도 없이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무일푼으로 온 나에게 돌아갈 여비가 없는 것은 물론 입에 풀칠하는 걱정이 끊일 날이 없었다. 설령 가게 된다 하더라도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 다시 돌아간다면, 그 어느 누가 반겨주겠으며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그럭저럭 첫 시도가 괜찮았던지 무보수로 1년을 보낸 후 그리스 공수특전단,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해군 UDT- UDU학교, 공군사관학교 등에서 정신없이 시범을 보였다. 이를 마치고 얼마간 시간이 흘러 특수경찰학교교관(1978~1992), 해군UDT-UDU학교 교관(1992~1995)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1982년 정식협회는 아니지만 유도협회와 함께 태권도협회의 전신이 되는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했고, 1987년 단독 정식 태권도협회가 탄생하고부터 지금까지 기술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1981년 그리스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지도 5년 정도 흘렀을 때, 아니면 아마도 그 이전부터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리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권익을 보호해 줄 단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로 가려면 추가 경유지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대사관을 통하게 되면 늑장처리로 애를 먹곤 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과 부딪히다 보니 정말 한인회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해 직접 내손으로 조금씩 기반을 다져 한인회를 창설하여 재그리스 한인회 초대 한인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말이 좋아 한인회지 이제 세상으로 싹을 내민 떡잎이다 보니 한인회를 잘 자라게 해 줄 수 있는 거름이 필요했다. 교민들도 각자 다 살기 바빴지만 그래도 한인회를 위해서 나름대로 협조들을 많이 해 주어서 지금까지도 여러 한인회장들을 거치면서 잘 운영이 되고 있다.

나는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를 따라서 영락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믿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교회에 다녔던 기억은 잊히질 않고 나도 교인이라는 생각이 잠재해있었나 보다. 고향을 떠나 해외에 와 살며 향수에 젖어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니겠는가.

나약해진 마음을 든든하게 해 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한인들에게 큰 힘이 될 텐데 하는 마음을 나나 나의 처나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차에 목사님 한 분이 그리스에 오시게 되었는데 예배 장소를 구하고 있는 중이셨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주일마다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하고, 청소며 잡다한 것들도 내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그리스 한인교회를 열게 되었다. 그 때 태권도장 간판 앞에서 찍은 교인들의 사진이 지금은 빛바랜 상태로 남아있지만 그 당시의 갓난아기는 어른이 되었고 소년들은 중년이 되어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후에는 한인교회가 이전을 하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한글수업도 받게 하여 한인학교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는데 후에 대사관이 후원을 하게 되고 어린 자녀들을 둔 가정에서 모두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한인학교가 정식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육성회비가 없어 기금을 마련해야했는데 교민들은 거의 모두가 정말로 성의껏 협조들을 해주었고 이곳을 방문했던 분 들 중에서도 그 뜻에 동참해서 크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 상사 지사장들도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특히 대우의 이동환 지사장, 삼성의 최종훈 지사장은 지금도 그 고마운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경제적으로 큰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몸이나마 헌신을 하자는 생각에 열심히 기금을 걷어 한인학교에 전달해 주었다.

안헌기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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