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이런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판정 청탁과 심판 로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불의를 보면 맞서야 한다는 무도정신이 온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태권도계는 금품수수와 승부조작, 심판 로비설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류 감독을 지난 16일 만나 공정한 판정 풍토와 정정당당한 경기장 문화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 승부조작 의혹 파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번 파문의 핵심과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 어차피 전무 한 사람의 책임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결을 하나? 언제나 시한폭탄처럼 터질 시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일들이 한 번에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토양이 배양되어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시킨 적 없고 ‘오더(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도덕불감증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누가 어떤 식으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는 정도는 이미 예견되는 일 아닌가? 

누군가 정치적 야심으로 한번 들이댄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사태는 어차피 아니지 않은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도 살인이다. 앞으로 밝혀질 일이지만 승부 담합이나 지시 혹은 심판들의 과잉충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는 결코 ‘정치적 딜’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다. 그럴 수 있는 판을 우리 모두가 만들어 왔기 때문에 모두가 새롭게 각성하고 새로운 시스템과 풍토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 공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사람 몇 사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 심판, 학부모, 선수 모두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 정정당당한 경기장 문화가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 솔직히 우리 태권도 경기장의 철학 부재가 가장 큰 근본적 원인이라고 본다. 지도자들의 지도철학과 심판들의 사명감이 없으면 어차피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정정당당하고 멋있게 한번 겨뤄보자는 지도자들보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고 보자는 지도자들이 많다면 어차피 깽판이 된다. 공명정대하게 사명감을 가진 심판들 보다, 유리하게 판정해주고 인사 받는 심판이 많다면 암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권도는 ‘스포츠’이기 이전에 무도다. 그것도 상무정신을 숭상하는 우리민족의 유일한 무도다. 정정당당(正正堂堂)하게 겨루는 것이 무도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인 것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 아닌가? 스포츠 정신의 근간도 ‘페어플레이’다. 

‘정정(正正)’은 지도자의 몫이고 ‘당당(堂堂)’은 심판들의 몫이다. 지도자들은 바른 방법으로 승부를 하고 심판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당당할 수 있는 판정을 하면 된다. 

태권도 경기는 문제가 있는 경기다. 애매모호한 규칙들이 심판들이 또 그런 짓들을 하게 만들고 있다. 차제에 모든 권위적 요소와 잘못된 규정들도 무조건 개정해 나가야 한다. 

-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경기 지도자들은 심판들을 만나 유리한 판정을 부탁하고 ‘로비’를 한다. 이런 풍토를 어떻게 보나. 또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 비겁한 짓이다. 솔직히 ‘주니까 받는 것’ 아닌가. 받아 보니까 또 요구하게 되고…. 그런데 그런 것이 관행이라니! 그렇게 생긴 관행들은 범죄고 죄악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엄청나게 선물을 챙겼다는 애기가 TV를 통해서 까지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들이 서있는 경기장이 얼마나 썩었냐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짓밟고 그 가치를 소멸시켜 버리는 그야말로 가장 비겁한 죄악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지면 다음에 이기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이기면 그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는, 그런 것이 진정한 무도의 세계가 아닌가? 드러나는 청탁자와, 청탁으로 인한 승부에 관여하는 심판들은 모두 경기장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그 길만이 무너져 바닥에서 신음하는 태권도 경기를 살려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 김세혁 감독의 일명 ‘갈비세트' 파동을 어떻게 보나. 

△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 정도면 최소 3-4백만 원 정도의 돈이 들 텐데. ‘지난번 경기에서 언쟁을 벌인 것이 미안해서 그런 정도의 인간적 인사를 한 것’이라는 표현대로 라면, 나 같은 경우에는 집이라도 팔아야 할 정도 아닌가? 인간적 인사와 뇌물의 선은 어떻게 구분을 할 수 가 있나? 모든 것이 그렇게 시작해서 커지고 만들어 지는 것 아닌가? 

준 쪽이나 받은 쪽이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줬으니 받았겠지만 받은 쪽도 너무 이상하다. 왜 받나? 주니까? 그건 배임수재 아닌가? 말 그대로 돌려주든지, 먹었으면 말을 말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어차피 서로 입장에서 불리하면 써먹고 내 뱉는 그런 판인가? 

- 최근 일부 심판들을 만나 승부조작에 대한 ‘양심선언’을 하라고 종용했다는데, 사실인가. 왜 심판들을 만났나. 

△ 심판들을 만나 ‘양심선언’을 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한 사람은 대학 동기라 전화해서 본인이 보기에 진짜 경기가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것이 전부였고, 다른 한사람은 입버릇처럼 항상 자신은 양심에 따라 판정한다고 하고 공직에도 있는 사람인데, 들리는 말에는 이번 일에 앞장서서 최선을 다했으니 올림픽 심판에 보내줘야 한다고 술 먹고 떠든다고 해서 그렇게 추호도 부끄럼이 없이 소신껏 잘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그런 것을 종용할 일도 없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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