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일, 오후 3시.
장맛비가 추적추적 서울을 적셨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국기원으로 가다가 국기원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우중충한 회색을 보고 문득 가기가 싫어졌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회색빛의 국기원은 너무 음침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국기원 내부의 분위기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몸속에서 벌레가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국기원으로 가던 걸음을 접고, 약속 장소를 바꿨다.
국기원을 내려오면서 문득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인 윤흥길의 중편소설 <장마>(1973)가 떠올랐다.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학창시절 탐독했던 <장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몇 줄 안 되는 문장만으로도 장맛비가 만들어내는 음울하고 음침하며 질척이는 느낌이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장마〉는 6.25전쟁 중에 일어난 한 가정의 비극적 상황과 그 극복과정을 아이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6.25가 일어나자 외삼촌은 국군으로 입대하고, 삼촌은 빨치산이 되면서 한집에 사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좌우이념 갈등은 시작된다.
두 할머니는 내내 반목하다가 임종 직전인 장마 끝 무렵에 화해한다. ‘마음의 장마’가 함께 걷힌 셈이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소설 끝 문장은 그래서 더 실감난다.
국기원으로 눈을 돌려보자.
현재 국기원은 온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세계태권도본부’라고 하기엔 조직의 구조가 허술하고, 구성원들의 관계는 음습하고 우중충하다. 두 사람의 볼썽사나운 싸움은 지루한 장마처럼 계속되고 있다.
소설 <장마>의 두 할머니처럼 두 사람의 갈등은 장마 끝 무렵에 화해로 끝날 지도 모른다.
설사 이들이 극적으로 화해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장마’까지 걷힐지 의문이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국기원 안팎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처신도 쉽게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4 세계태권도 옥타곤 다이아몬드 게임, 태권도원에서 개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