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7.13 토 11:23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Ⅱ]
파란만장 정구광 사범의 이민 18년 (6)
1년 6개월 만에 태권도시나리오에 전념하기 시작
  • 정구광 사범
  • 승인 2007.06.25 12:11
  • 호수 551
  • 댓글 0

제2지관을 개업한지 5년째가 되었을 때다. 5주년 기념 시범을 하려고 신문과 방송으로 두 달 전부터 선전을 해오고 있었다. 매년 개업한 날에 맞춰서 시범을 해왔고 그것이 관행이 되어 버렸다. 시범을 하기 거의 한 달 전에 한국에 있는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직접 통화를 했다.

“아버지, 저 구광입니다. 많이 편찮으세요? 한 달 후에 연무 시범이 있지만 바로 귀국하겠습니다.”
“구광아, 고맙다. 그러나 나는 괜찮으니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꼭 준비한 시범을 마치고 와라.”

신신당부를 하시는 아버지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그 당시에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니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시범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관중들에게 말했다.

“오늘 이 시범이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배려 때문입니다. 한 달 전에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범을 취소하고 한국에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시범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무사히 마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태권도 시범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관중들이 일어나서 아버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하루에만 자그마치 89명의 새로운 수련생들이 가입했다. 가라테가 아닌 순수한 우리의 태권도로 말이다.

모든 행사를 다 마치고 뒷마무리를 사범들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아버지께 가겠다고 전화를 걸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아버지께서 5분전에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전화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을 보기 전에는 안돌아 가신다고 하셔놓고 단 하루를 더 기다리지 못하시고 끝내 가셨던 아버지. 두 눈을 감으시기 전에 혹시라도 내가 왔는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하시다가 결국은 눈을 감으셨다는 말을 듣고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전화를 받았던 큰 누님에게 부탁하여 돌아가신 아버지 귀에 전화 수화기 좀 갖다 대달라고 해서 듣지 못하는 아버지를 향해 애절하게 말했다.

“저를 꼭 기다리신다고 하셔놓고 왜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아버지는 끝내 대답이 없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내가 태권도를 가르친 이래 처음으로 가장 많은 수련생이 새로 입관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 마치고 미국에 돌아왔다. 모든 체육관을 제자들에게 넘겨주고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살고 있는 리노로 돌아갔다.

태권도 영화를 만들어서 권도가 가라테보다 월등히 우수한 무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태권도인들이 다시는 가라테 간판을 걸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는 꼭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것이 결국은 내 인생을 망쳐놓게 되었다.

불효자로 전락해버렸고 가정까지 파탄으로 이를 지경이 되어 제자들에게 1~2년 후에 다시 돌아올 터이니 체육관을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남겨놓고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태권도의 삶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리노로 이사해서 지게차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한 달 월급이 5~6천 불 되는 좋은 직장을 잡아서 별 부족함 없이 살았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놀러 갔을 때 혼자 있기 심심하여 술을 마시다가 창고에 가서 무언가를 찾다가 아내가 꼭꼭 숨겨놓은 내 도복과 검정띠, 태권도 영화 시나리오를 넣어둔 박스 하나를 우연히 찾게 되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도복을 입고 띠를 매고 소파에 앉아서 내가 쓴 태권도 시나리오를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갔다. 술을 마시면서 고민에 빠졌다. 꼭 1년 6개월 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태권도 영화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내와 나는 이혼을 했다. 나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나서 심한 회의에 빠져서 카지노에 가서 노름과 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캔 맥주 18개짜리 한 박스를 사들고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차를 타고 사격연습을 하러 갔다. 나는 무슨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 있으면 항상 맥주를 사들고 산에 가서 사격 연습을 하며 결정을 내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그랬다.

▷다음호에 계속

정구광 사범  dssim22@paran.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