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호구 공인에 대한 잡음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정원)이 공인업체 관리에 대한 투명하고 엄정한 입장을 천명했다.

양진석 WTF 사무총장은 지난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adidas)가 전자호구 공인을 받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는 세간의 소문에 대해 “우리 조직을 우습게  보지 말라. adidas의 압박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다”며 다부진 의지를 보였다.

양진석 WTF 사무총장이 지난 7일 전자호구 공인을 받기 위해 adidas가 전방위 로비와 압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에 대해 WTF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자호구 공인 잡음과 논란

현재 WTF의 공인을 받은 전자호구 업체는 한국의 라저스트(LaJUST) 하나 뿐.

라저스트사는 WTF가 2천 5백만 원을 주고 ‘태권도 전자채점 방식의 신뢰성 검증을 위한 연구’를 위해 위탁계약을 맺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의 표준규격과 기술부문 테스트 등 각종 시험을 모두 통과, 지난해 9월 WTF와 공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유효타격 기술과 무효타격 기술의 구분 기능’ 항목을 통과하지 못하는 등 KISS가 제시한 표준에 미달된 오스트리아의 ATM과 스페인의 Daedo 측은 “전자호구 공인에 독과점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고사항”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동조하며 전자호구 공인을 위한 추가적인 시연회를 개최해 줄 것을 WTF에 요구, 지난 1월 경희대에서 열린 3차 시연회에서 자사의 제품을 선보였다.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ATM은 지난해 3월의 2차 시연회와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타격강도 측정의 정확성, 유효타격 기술과 무효타격 기술의 구분 등에서 잦은 오류를 드러낸 것.

결국 WTF 전자호구특별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1단계 평가에서 두 업체의 제품을 조건부로 통과시킨 후 2단계로 KISS에 정밀 검사(실험 평가)를 의뢰했다.

adidas의 압력과 로비설

WTF의 공인을 받기 위해선 LaJUST의 전자호구처럼 전자호구특별위원회의 기본기술 요구항목을 모두 통과하고, KISS의 표준기준과 실제경기 테스트 등을 거쳐야 한다. 전자호구특별위의 기본기술 요구항목은 △타격강도 측정의 정확성 △연속타격 득점의 정확성 △타격강도 조절 기능 △유효타격 기술과 무효타격 기술의 구분 기능 등 모두 4가지다.

그러나 ATM은 이런 기준과 절차를 무시하고 세계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인 adidas의 막강한 파워를 등에 업고 손쉽게 자사의 제품을 공인받으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내의 전자호구 관계자들은 “ATM은 전자호구 제품을 개발 생산하고, adidas가 판매와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며 adidas가 이런 이유 때문에 ATM 제품을 공인받기 위해 IOC와 WTF, KISS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하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지난 1월 경희대에서 열린 전자호구 시연회에서 ATM 관계자들은 자사제품의 메이커를 adidas로 불러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날 adidas 측 관계자는 시연회에서 “adidas는 WTF의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밝혀 'ATM=adidas'라는 세간의 인식을 입증해 보였다. 

이런 가운데 adidas 측은 전자호구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일부 국가에 전자호구를 기증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 모나코에서 열린 모나코 엘버트공배 국제태권도대회(Coupe Prince Albert II de Monaco)에서 adidas가 판매하는 전자호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르도록 했고, 이 대회에 조정원 WTF 총재가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WTF가 승인한 공인 대회도 아닌데, 조 총재가 참석한 것은 adidas의 로비에 걸려든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WTF는 “엘버트공배 주최 측의 적극적인 초청으로 조 총재가 참석한 것이다. adidas가 판매하는 전자호구로 경기를 치르는지 몰랐다. 총재가 반드시 공식 승인대회에만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자호구를 공인받으려는 adidas의 전방위 로비와 간접적인 압력은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최근 WTF 관계자가 KISS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문서가 이를 입증한다. 한 소식통은 “(adidas와 연관이 있는) WTF 관계자가 KISS에 문서를 보내 LaJUST가 공인을 받기 위해 거친 절차, 즉 표준규격 통과와 실험실 평가 등을 무시하고 전자호구에서 방출되는 전자파의 유해 여부만 평가해 adidas 판매 전자호구가 공인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WTF도 adidas의 로비와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

<본지>는 이같은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7일 황종학 KISS 책임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묻자 그는 WTF 관계자가 KISS에 이같은 문서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 채 “다음주 11, 12일에 양진석 WTF 총장을 만나 전자호구에 대해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자파가 인체에 얼마나 흡수되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를 'SAR'라고 하는데,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 여부만 가지고 전자호구를 공인할 수는 없다”며 “추가로 공인하는 제품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만큼 LaJUST 제품보다 까다롭게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TM과 Daedo의 제품에 대한 실험평가 결과는 4개월 후에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WTF의 입장

그렇다면 WTF의 입장은 어떨까? 양진석 WTF 총장은 adidas가 공인을 받기 위해 WTF를 압박하고 전방위 로비를 하다는 세간의 소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는 adidas가 문서를 보내오는 등 간접적으로 WTF의 입장을 불쾌하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도 WTF 관계자가 KISS에 문서를 보냈다는 의혹에 대해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는 지난 7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pressure’(압박)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아디다스가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은 건지, 시비를 걸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조직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라며 “adidas 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당하기 때문이다”며 비장한 모습을 보였다. 

양 총장의 이같은 말은 거대 스포츠 브랜드인 adidas가 아무리 로비와 압박을 한다고 해도 IOC 산하의 국제스포츠기구인 WTF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는 이날 adidas가 KISS에 전자호구 대신 일반호구를 보낸 일과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당시 adidas 관계자를 만나 호되게 야단친 비화 등을 들려주며 “우리는 동등하게 테스트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뿐이다. adidas 제품이 좋다면 쓰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KISS가 보내오는 결과만으로 공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다. 어정쩡한 결정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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