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8회(여자는 1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끝나자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종주국 아성 빨간불, 긴장하라 대한민국’(경향신문), ‘종주국 위상 자성론’(세계일보), ‘체면구긴 종주국, 간신히 종합우승’(동아일보), ‘쑥스러운 종합우승’(스포츠조선), ‘종주국 태권도, 이제 혁신 필요하다’(스포츠서울) 등 비판 일색이었다.

남자 헤비급 남윤배(오른쪽)가 준결승에서 말리 케이타를 공격하고 있다.

● 한국의 독주체제 깨질까? 

이번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남·녀 동반 우승을 차지했지만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도표 참조>

여자부는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로 당초 목표를 달성했지만 남자부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하는데 그쳤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펜암, 유럽 등 각 대륙 국가들이 한층 향상된 기량으로 한국의 아성을 위협했다. 특히 남자부는 총 8개의 금메달을 한국과 스페인, 미국, 말리, 대만, 쿠바, 크로아티아, 터키 등 8개국이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가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외 태권도인들과 일부 언론들은 앞 다퉈 “한국의 태권도가 추락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주문하고 있다. 심판 판정이 한국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성적 부진의 면피용이 되어선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태권도협회(KTA) 관계자들과 일부 경기전문가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 선수들이 부진한 이유는 한국 선수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해외 각국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지는 등 전력이 평준화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해외 각국 선수들의 기량이 평준화됐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젠 ‘남녀 동반우승’이라는 한국의 독주체제는 머잖아 깨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과거 전력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세 번의 올림픽을 치르면서 외국에서는 태권도 선수의 성장에 집중 투자를 했고 그 결과가 이번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 KTA 관계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 문제점 개선하려는 집행부 의지 중요 

그렇다고 해서 남녀 동반우승을 외국에게 선뜻 내어줄 수도, 빼앗길 수도 없다. ‘한국 태권도는 세계 최강’이라는 자만심은 버려야겠지만, ‘종합우승은 내줄 수 없다’는 자존심은 있어야 한다.

여자 페더급 이성혜(왼쪽)에게 매섭게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는 박만성 코치.

문제는 이런 ‘자존심’을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나타난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많은 경기전문가들은 “한국이 올림픽과 세계대회에서 종주국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선 대대적인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내부 혁신’의 핵심은 △투명하고 공정한 선수 선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선수 관리 △외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전력 분석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혁신 내용들은 세계대회,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이 끝나면 많은 전문가들이 해법으로 제시한 것들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KTA의 의지 부족이다.

이번 대회가 끝난 후 임종환 여자부 코치는 “세계대회와 올림픽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양진방 KTA 기획이사는 “앞으로 국가대표 선수를 집중 육성하고 있는 다른 종목처럼 태권도도 국제무대에 걸맞은 선수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한국 선수들의 돌려차기 위주의 단순한 기술 구사와 소극적인 경기 운영, 국제대회 경험 부족에서 오는 자신감 결여 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량이 좋은 외국 선수들과 친선 경기를 자주 하고, 해외 전지훈련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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