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새벽에 내 단잠을 깨우던 것은 부엌에서 피어오르는 김밥의 유혹. 어머니의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고소한 참기름의 냄새는 내 단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비행기 내에 기내식이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챙길 수고는 덜었지만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잠시 그때의 향수에 젖어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을 밟는 것처럼 황홀한 순간이 있을까. 이번 베이징세계태권도대회 참석은 나에게 첫 직장에서 떠나는 첫 해외출장이요, 첫 해외여행인 만큼 공항버스를 기다리면서 흥분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내 마음을 들뜨게 한 것은 세계 대회를 본 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세계 무도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인 소림사를 간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소림사를 아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소림사’는 ‘소실산(少室山) 아래의 무성한 숲속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북위의 태화19년(495년) 효문제때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30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필요한 목록을 적듯, 나는 소림사로 떠나기 전에 소림사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지난해 3월 본지에 기고했던 류병관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는 소림사를 탐방한 뒤 “소림사 입구는 이미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경내를 들어서면서 소림사 안에서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며 “소림사 자체로는 어느 곳에서도 이곳이 세계 최고 무학, 소림무술의 정수를 간직한 곳이라는 느낌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평했다.

관광명소로 둔갑해버린 소림사는 명성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 상품을 파는 곳으로 변질되었다는 얘기를 접했지만 나는 큰 기대를 접을 수 없었다.

지난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제남국제공항으로 떠났다. 제남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가 하강할수록 구름에 가려졌던 육지가 조금씩 모습을 드려내기 시작했다. 네모반듯하게 정리된 논밭과 붉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활한 낯선 땅의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겼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바람의 세기를 말해주듯 나무가 힘차게 요동쳤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승무원이 중국현지시간을 알려줬고, 나는 시계를 한 시간 늦게 맞췄다. 중국인 승무원은 “중국 날씨가 덥기 때문에 여름에 한국이 얼마나 시원하지 모른다”고 얘기하면서 밖에 나가면 더울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기온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자 후텁지근했다.

洗手?(화장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자로 적혀있는 화장실 표시판을 보며 중국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여담이지만 중국하면 화장실에 문이 없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여행 중에 문이 없는 화장실은 보지 못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택시? 택시?”를 연신 외치며 손님을 모으려는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았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현지가이드를 따라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청명한 하늘 아래 발을 내딛으며,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김령선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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