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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 태권도 사범 수기 공모 Ⅱ]
파란만장 정구광 사범의 이민 18년 (2)
힘 약한 동포 착취하고 울리는 어글리 코리안들에게 배신당해
  • 정구광 사범
  • 승인 2007.05.28 13:10
  • 호수 547
  • 댓글 0

“학교와 태권도장 둘 다 보내 줄 테니 집으로 가자.”

집에서 쫓겨 난지 2개월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자취방으로 찾아오셨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단증을 따지 못했다. 도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기 때문에 단증은 나에게 사치품뿐이었다.

그러나 단증은 없지만 관장님이 검은 띠를 주셔서 검은 띠를 매고 운동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했고 1987년 제대한 후 스승이신 관장님의 권유로 할렐루야합기도선교시범단에 가입했다. 미국에 체류하는 조건과 미국에 가면 내가 일할 수 있는 도장이 제공된다는 조건으로 1988년에 LA로 갔다.

그 당시에 많은 돈을 부모님께서 빚을 내어 스승인 관장님께 주고 미국에 왔는데 선교시범을 다 마치고 보니 내가 머물 도장도, 의지할 사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미국에 가서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며 6촌 누나 전화번호를 주셨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6촌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했다. 나는 누나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갔고 곧 빈털터리가 되었다.

나 때문에 다투는 누나와 매형에게 미안해서 나는 무작정 6촌 누나 집을 나와서 교회에서 만난 친구 아파트에서 지냈다. 교회에서 친분이 생긴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해줬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마켓과 마켓 옆 건물에 있는 일본식당에서 월 $1300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 월급 날짜가 되었는데 한국 주인이 가게 수표로 월급을 줬다.  

“전 수표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됩니다. 현찰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왜?”
“영주권이 없어서 은행 구좌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럼, $800밖에 줄 수 없어.”

한국 동포들이 영주권이 없는 같은 동포들에게 학대와 갈취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내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내가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을 한국 주인이 알고 나서 당초 약속한 금액에서 $500을 깎은 것도 모자라 첫 달 월급은 물론 그 다음 달 월급도 주지 않았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동안 밀린 월급을 주십시오.”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주인은 한 달 월급인 $800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 사람과 논쟁을 한다면 이민국에 신고할 것 같아 한 달 월급만 받고 나왔다. 그런 자가 한국에서 서울대학교를 나온 엘리트란다.

1988년, 한국 사범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무술인 가라테 간판을 달고 태권도나 합기도를 지도한다는 것이었다.

 “왜 가라테간판을 달고 태권도를 가르칩니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서 그 이유를 물어봤다.

“가라테 영화는 수없이 극장에서 상영되어 전 미국인이 알고 있습니다. 반면 태권도에 대한 영화는 단 한 번도 영화로 제작되지 않아서 많은 미국인들이 태권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 당시 23세의 나이로 선배들에게 따져들며 말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얼굴입니다. 일본 무술인 가라테를 앞세우고 뒤에서 태권도를 지도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이며 태권도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내 말은 듣지 않았다.

태권도 사범 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면서 사범들과 태권도 간판 때문에 다투니 나를 사범으로 채용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했다.

전에 일하던 식당 주방장에게 연락이 왔다. 그의 누나가 알고 있는 한국 태권도 사범이 동역자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와이에서 태권도 대표선수를 했었으며 미국 국가 대표선수까지 지냈고 도장을 해서 제법 성공한 사범이라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즉시 연락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30분 정도 운전해서 발레호라는 곳에 있는 도장으로 가보았지만 그곳 역시 가라테 간판을 달고 있었다. 사범을 만난 지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고 식당에서 만났던 주방장이 하와이에 가서 고깃배를 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주방장과 무작정 하와이로 떠났다.

사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며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못했던 공부를 하러 왔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부모의 도움 없이 일을 하면 충분히 고학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미국에 왔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미국에 올 때 문화교류 1년 비자를 받아가지고 와서 1년 동안 미국 어느 곳이든지 무난히 다닐 수가 있었다. 주방장과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지만 막상 갈 곳이 막막했다.

정구광 사범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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