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됐습니다. 그래도 나를 ‘비태권도인’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태권도 전문가로 남고 싶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3시. 충북 청원군 충청대학 이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오경호 세계태권도문화축제 조직위원장(충청학원 이사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날 그는 특유의 달변(達辯)으로 현재 태권도계의 실상을 거침없이 헤집고 파헤쳤다. 그렇다고 비판만 한 것은 아니다. 국내외 태권도계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는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9년간 진두지휘한 내공(內攻)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국내외 태권도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교분을 쌓으면서 태권도를 공부해서인지 태권도계의 정서와 흐름, 생리 등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 “나와 태권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비판하려고 한다면 확실한 논리와 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저돌적인 자신감’도 묻어났다.

오경호 조직위원장은 “‘태권도’는 성공작이지만, ‘태권도 코리아’는 실패작”이라고 단정지었다. 태권도가 지니고 있는 건강, 교육, 문화, 관광, 평화 등 무한한 가치에 비해 한국의 태권도는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중심이며 무사안일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경호 조직위원장.

- 왜 ‘태권도’는 성공작인데, ‘태권도 코리아’가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태권도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무도이자 스포츠이다. 그리고 한국인만 소유하고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로 발전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태권도 종주국이니까 우리 식대로 한다. 너희들은 따라오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여전하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태권도를 발전시킬 수 없다. 솔직히 말해 태권도 종주국이라고 하면서 태권도 문화 인프라는 얼마나 있는가? 반성할 일이다. 이제 ‘태권도 코리아’를 살리기 위해 이미지 마케팅을 해야 한다.”

- 국내 태권도 제도권의 일부 관계자들은 해외 여러 나라들의 성장과 위협으로 인해 ‘탈 한국화’ 현상이 두드러져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데요.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반발’입니다. 태권도 종주국의 일방적인 독주에 대한 반발이 싹트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태권도인들도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 즉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의 입장에서 태권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현재 세계 태권도의 흐름과 정서를 60-70년대, 원로 한인 사범들이 해외 각국에 나가 태권도를 개척하고 보급하던 시대의 시각으로 바라봐선 안 됩니다. 그때는 외국의 태권도인들에게 태권도종주국과 한인 사범들의 생각과 주장이 먹혀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제는 많이 성장했고 입지가 커졌습니다.

‘태권도 종주국은 한국’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태권도가 모든 것을 주도해 나가야 하고, 외국의 태권도인들에게 한국의 태권도관을 일방적으로 주입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자식도 사춘기가 오면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반항합니다. 자식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부모 노릇만 하려고 하고,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면 가정에 불화가 생길 것입니다.

태권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외국의 태권도계가 한국만 추종하며 따라오겠습니까. 외국 태권도인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도 해주고 고충도 해결해 주면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앞에서 질문한 것과 연계되는 것인데요. 최근 국내 지성인들 사이에 ‘태권도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태권도의 세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시죠. 

“나는 오래 전부터 태권도가 한국의 국수주의에 갇혀 있으면 태권도의 세계화는 요원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많은 한국 태권도인들은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태권도에 관한 한 절대적인 존재이며 태권도에 관한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태권도는 이제 더 이상 한국과 한국 태권도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발상을 버리고 세계 태권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태권도 저변확대를 위해 어떻게 서비스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태권도 세계화가 되기 위해선 한국 태권도인들이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춰야 합니다. △외국 사람들을 폭넓게 이해하는 ‘오픈 마인드’ △외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국제 감각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극복하고 수용하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대 흐름에 맞는 ‘태권도 국제 규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 올해는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축제의 개요와 취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축제는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합니다. 해외에서 열리지만 우리 축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또 참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축제가 열려도 30개국은 무난히 참가할 것입니다.

이번 축제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태권도로 하나가 되며 △청소년 국제교류의 장(場) 역할을 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축제 조직위원회는 이번 축제의 원활한 준비와 성공을 위해 스포츠마케팅전문회사와 함께 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성화를 들고 쿠알라룸푸르 거리를 돌고, 말레이시아 국왕이 개회식 때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류 스타인 가수 장나라는 이미 홍보대사로 위촉한 상태입니다.

축제를 바라보는 말레이시아의 반응도 좋습니다. 말레이시아의 한 언론은 이 축제에 대해 ‘Malaysia To Host World Taekwondo Festival'이라고 소개하는 등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 이번 축제가 지난 축제에 비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입니까.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의 태권도인들도 참가한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태권도로 하나가 되자’는 축제의 기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 세계태권도연맹(WTF)뿐만 아니라 ITF의 태권도인들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무예대회 경연종목에 ITF 품새도 포함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태권도인들이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축제는 WTF가 공인한 축제도 아니고 민간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주최하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무예대회의 또 다른 특징은 겨루기, 품새, 격파, 호신술, 태권도에어로빅 등 경연종목을 확대하고, 10세 이하 어린이부터 청소년, 주부, 여성그룹, 남녀혼성듀엣, 가족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을 신설했다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경연 방식과 종목에 변화를 주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고 봅니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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