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고등학교 3학년이면 대학 입시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수업이 끝난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가면 밤 10시. 경기도 고양시 무원고 태권도 선수인 이재후(19)의 하루도 다른 학생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지난 1월 6일 재후 아버지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단란했던 재후 가족의 모습은 사라졌다. 신호위반을 한 승용차가 재후 아버지 승용차를 추돌한 것이다.

이재후 선수가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다.

재후는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태권도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지난 1월 8일 제주도 전지훈련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김민수 코치는 “지금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네가 아버지 곁에 있다 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받아오자. 메달을 아버지께 걸어드리자”고 말했다. 재후는 작년 12월 훈련 도중 무릎을 크게 다쳐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를 딛고 일어서 지난 2월 말 ‘제 2회 제주평화기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남고부 L미들급 3위에 입상했다.

김 코치는 “무원고에서 1년 6개월 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 전국대회 메달을 받은 선수는 재후가 처음이었다. 재후는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재후는 제주도에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계신 일산 백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을 것으로 기대하고 병원에 갔지만 아버지는 의식불명이었다. 재후는 대회에서 받아온 메달을 아버지 곁에 놓았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져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재후 아버지는 의식불명이기는 하지만 재후가 대회에서 받아온 메달을 곁에 둔 이후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재후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사촌형(이재형/우석대)이 태권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재후. 그가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은 함께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는 무원고 3학년 친구들이다. 재후는 “고3 동기 8명 모두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이후 재후의 하루는 달라졌다. 어머니가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집안일은 재후의 몫이 되었다. “친구들과 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열심히 해서 다음 대회에서 우승해서 꼭 아버지께 금메달을 드리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재후는 지난 3개월 동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요즘 재후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다. “아버지 월급날이면 가족이 외식을 했다. 태권도를 하면서 힘이 들 때면 아버지가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힘들어 보이면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자주 갔었다. 아버지가 빨리 깨어나셔서 함께 등산을 가고 싶다”고 했다.

재후는 아버지가 의식을 회복하는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재후의 꿈은 소박하다. “아버지가 완쾌하셔서 가족끼리 밥을 먹고 싶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재후는 앞으로 ‘제9회 광주 5·18민중항쟁추모기념 시장기 전국 남·여중고등학교태권도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김령선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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