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의 핵심 업무인 경기-심판 업무를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맡는 것에 대해 대다수 국내 태권도인들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WTF가 조직개편을 앞두고 미국인 스티븐 캐페너 씨(49)를 경기-심판담당 직원으로 채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국내 태권도인들은 “한국에도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외국인을 기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전자호구 국제태권도대회에서 한때 유력한 경기-심판 담당자로 거론된 스티븐 캐패너 씨(왼쪽)가 고의민 기술위원장(가운데), 이탈리아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서상 시기상조” 

WTF 조직 구성이 한국인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고 해서 WTF 핵심 업무인 경기-심판부를 외국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태권도인은 "WTF보다 개방적인 유도연맹의 경우, 일본 사람이 총재를 맡고 있지 않지만 경기-심판부 만큼은 일본 사람이 맡고 있다”며 반대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체육대학교의 한 태권도학과 교수도 “외국인이 경기-심판부를 맡는다는 것은 국내 정서상 시기상조”라며 신중론을 폈다.

이 같은 반대 여론 때문이었을까? WTF는 스티븐 캐페너 씨를 양진석 사무총장 보좌역(비상근)으로 채용했다. WTF 강석재 홍보부장은 그를 경기-심판 담당 직원으로 채용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애초부터 검토된 것이 없다”며 “정식 라인이 아닌 비선 라인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만 듣고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태권도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스티븐 캐페너 씨가 경기-심판부를 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양진석 총장은 캐페너 씨의 업무에 대해 “업무가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총장 보좌역으로 필요한 요소요소에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캐페너 씨가 WTF 조직과 사무처 정서를 파악하고 업무 능력을 검증받으면 정식 직원으로서 경기-심판부를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유연하고 개방적인 세계관 필요”

 그렇다면 캐페너 씨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5일 전자호구 국제태권도대회가 열린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그는 “국제스포츠기구인 WTF에 부장, 차장급 직원이 한 명도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총장 보좌 일을 하면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홍보, 마케팅 분야는 잘 몰라 경기, 심판 분야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이 말은 앞으로 자신이 주력할 일이 경기-심판 분야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듯했다.

“앞으로 경기-심판 담당을 맡기면 수락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것은 내가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능력이 있으면 국적(國籍)은 문제될 게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국내 태권도계 일각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한국 태권도계의 폐쇄성과 배타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무조건 외국인이 경기-심판부를 맡아선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세계관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WTF는 경기-심판부를 맡고 있는 상근직원이 없다. 전익기 경희대 교수, 정국현 한국체대 교수, 조임형 용인대 교수 등이 경기-심판 전문위원을 한시적으로 맡아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

과연 WTF 사상, 최초의 외국인 경기-심판 담당자가 나올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서성원 기자  dssim22@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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