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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설레는 첫 올림픽[리우올림픽 특집 ④] 여자 –49kg급 김소희
  • 양택진 기자
  • 승인 2016.07.21 21:28
  • 호수 875
  • 댓글 1

2015년 12월 6일(현지시각) 멕시코시티 그랑프리 파이널.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이 확정되는 이날 김소희(23, 한국가스공사)는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넘을 수 없을 것 만 같은 여자 –49kg급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에 도전한 2년 6개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대륙을 넘나들며 맨 몸으로 부딪쳤고, 피가 마르는 기다림 끝에 승리의 여신은 결국 김소희를 향해 미소 지었다.

26일 후인 8월 17일(현지시각),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첫 주자로 김소희가 리우올림픽 본선 무대에 오른다.          -------- 편집자주

겁 없는 18세 ‘소희’, 첫 세계 정상에 오르다

2011 경주세계선수권 여자 -46kg급 결승전.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발가락 인대가 끊어지고, 16강전서 부러진 손가락을 붕대로 동여맸지만 아프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김소희(왼쪽)의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 경기 장면.

중국의 리자오이를 상대로 펼친 결승전은 말 그대로 김소희의 독무대. 거침없는 공격으로 한국 여자 팀 유일한 금메달을 따냈고, ‘김소희’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키가 작아 서울체고 진학이 주춤했던 김소희의 가능성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은 박정우 코치(42, 현 국가대표 후보선수단 전임감독).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박 코치는 김소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전 세계선수권 국가대표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로 지켰다. 

방황 딛고 세계선수권 2연패...목표는 바뀌었다

한국체대에 진학, 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로 태릉에 입촌한 김소희는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김소희.

“지금까지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훈련을 멀리하고 태릉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호기심도 컸고, 친구도 사귀고 싶었다. 술도 마셔봤다. 그해 체전과 우수선수선발전을 뛰면서 성적은 엉망이 되고...더 이상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13 푸에블라 세계선수권 평가전서는 아슬아슬하게 다시 대표 1진에 선발되었다.

저산소 훈련을 거쳐 멕시코 전지훈련 때는 부담감에 밤마다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독기와 근성으로 버텼고, 결국 한국에서 15시간 떨어진 푸에블라에서 두 번째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 당시 세계태권도연맹(WTF)은 랭킹포인트를 기준으로 올림픽 출전 방식을 대폭 개혁했다.

국가협회의 체급 선정 방식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세계선수권 3연패를 꿈꾸던 김소희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가슴에 담았다. 목표가 바뀌었다.

그리고, 자신의 체급 보다 한 체급 위 강자들을 상대하는 길고 긴, 그리고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었던 숨 막히는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엄마, 나 집에 데려가면 안돼?”  

여자 –49kg급 올림픽랭킹 상위 6명에게만 주어지는 리우행 자동출전권의 길은 험했다. 간절한 만큼 힘들었다.

“욕심이 생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유가 없어졌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진짜 아무나 올림픽 나가는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때로는 하늘이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안에서 욕심이, 간절함이 옅어지고 있었다.”

2015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3연패의 꿈은 최종평가전 부상으로,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1차 선발전서는 8강전서 어이없게 패했다. 김소희에게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었다.

희망은 그해 8월 모스크바 그랑프리시리즈Ⅰ에서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으로 –49kg급 정상을 차지하며 불씨가 붙었다.

그러나 남은 두 번의 그랑프리서 부진을 겪으며 자동출전권은 또 다시 손에서 멀어졌다.

멕시코시티 그랑프리파이널을 앞두고 김소희는 대표 팀과 떨어져 모로코로 향했다. 모로코오픈에서 1등을 하면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 경기서 허무하게 패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온 몸이 녹초가 되고, 하루 만에 다시 멕시코시티로 향하던 날... 결국 참고 또 참았던 말을 엄마에게 토해내고 말았다.

“엄마, 나 집에 데려가면 안돼?” 여권을 찢어 한강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 김소희가 웃었다

모로코 오픈을 뛰고 하루 만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김소희의 첫 상대는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중국의 우징유.

2015 멕시코시티 그랑프리 파이널 김소희(오른쪽)와 우징유의 경기 장면.

첫 경기서 패한 후 다른 선수들의 3,4위전 경기 결과에 따라 간발의 랭킹포인트 차이로 자신의 올림픽 자동출전권이 결정되는 순간, 차마 경기를 볼 수 없었다.

경기장 바깥에서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고, 피가 마르는 기다림 끝에 올림픽 출전권 획득 소식을 제일 먼저 달려와 전해준 것은 선배 황경선. 세상에서 가장 긴, 잊을 수 없는 하루 끝에 김소희가 웃었다.

“땡큐 맘! 이제는 내 차례...설레는 첫 올림픽”

초등학교 1학년 김소희는 식당에 딸린 살림집에서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식당은 불길에 휩싸였고, 엄마의 머리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주방아저씨의 실수로 난 화재로 집은 풍비박산이 났고, 부모님은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불길에 휩싸인 식당에서 엄마 머리에 불이 붙었던 모습이 지금도... 중학교 1학년 때 태권도선수를 시작하면서 열었던 작은 분식집에서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게 나를 뒷바라지 했다. 이제껏 나를 버티게 한 것도 부모님이었고, 이제는 내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부모님이다.”

김소희의 훈련용 전자양말에 '금메달'이라는 글씨가 쓰여져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골든 프로젝트 팀과 함께한 8주간의 동계 훈련, 그리고 이어진 '플라이오메트릭(다양한 점프 동작으로 하체 근육을 발달시키는 트레이닝)'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김소희의 근력은 약 30% 이상 향상되었다.

리우올림픽 대표 팀 박종만 총감독 역시 김소희와 우징유의 한판 승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솔직히 선수촌에 있는 리우올림픽 디데이 간판을 보면 하루하루 날짜가 줄어드는데 긴장되더라. 때때로 그 긴장이 훈련 때도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오히려 지금은 많이 설렌다. 나의 첫 올림픽, 첫 경험이니까...”

기사를 마치며...

23살의 김소희가 18살의 김소희를 돌아본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한참 만에 입을 뗀 김소희.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정말 때 묻지 않고 아무 걱정없고, 두려움 없는 소희를 보게 될 것 같다. 어려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 부담이 없었다. 경주 세계선수권 때에는 부담감의 ‘부’자도 몰랐다.”

5년 전 그런 김소희를 본 적이 있다. 겁 없고 당찬 18세 여고생 태권도 국가대표. 오는 8월 17일(현지시각), 두려움을 벗어 던진 23살 김소희가 첫 올림픽 정복에 나선다.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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