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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서 '차동민' 석자 새기고 은퇴하겠다”[리우올림픽 특집 ①] 남자 +80kg급 차동민
  • 양택진 기자
  • 승인 2016.06.02 10:17
  • 호수 871
  • 댓글 0

한국 나이 올해 31살,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헤비급 금메달리스트, 세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출전을 은퇴로 배수진을 친 차동민(한국가스공사)이 호흡을 고르며 리우를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다.

“차동민의 이름은 리우올림픽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리우서 내 이름 ‘차동민’ 석자를 한국 태권도의 심장에 새기고 은퇴하겠다.”

지난 24일, 태릉선수촌 웨이트 훈련장에서 훈련 중인 차동민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아보였다.

간간히 후배들의 웨이트 훈련을 옆에서 거드는 차동민의 표정에서는 조용하지만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편집자주

Again 2008 베이징...그리고, 자만했던 2012 런던

차동민.

8년 전 차동민이 한국체대 재학 시절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금메달을 기대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잘 하면 동메달 정도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김경훈, 문대성으로 끝날 것 같던 한국 태권도 남자 헤비급의 계보. 그러나 차동민이 다시 한 번 완성했다.

그리스의 강력한 금메달 0순위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를 상대로 결승전서 큰 기술로 승부를 걸어 금메달을 차지, 한국 출전 선수 전원 금메달 기록의 마침표도 직접 찍었다.

한국 태권도 남자 헤비급 4대 천왕 중 으뜸의 자리에 올라선 차동민에게 4년 후 다시 기회를 잡은 런던올림픽은 아쉬움의 무대였다.

세계선수권 3연패, 터키의 탄리쿨루 바리를 맞아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차동민은 “랭킹 1위로 런던올림픽서 시드 1번을 받아 출전했지만 당시 내 마음은 자만과 다른 고민으로 차있었다. 승승장구 하던 탓에 큰 실패를 겪지 않았던 것이 독이 되었다. 웬만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했다. 그리고,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신경이 다른 곳에 많이 가 있었다. 남녀 문제가 참 쉽지가 않은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다시 4년이 지난 차동민은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을 은퇴라는 배수진과 함께 다시 도전한다.

그리고, 8년 전 베이징의 영광이 리우올림픽 태권도경기 마지막 날인 8월 20일(현지시각) 마지막 코트로 겹쳐지고 있다.

그랑프리 무대...실패에서 깨달음을 찾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지난 2013년 월드태권도그랑프리의 창설은 국제 스포츠 태권도계에 큰 바람을 몰고 왔다.

리우올림픽을 향한 메인 무대인 그랑프리서 많은 태권도 스타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동출전권을 손에 넣었고, 또 많은 선수들이 눈앞에서 자동출전권을 놓쳤다.

차동민(왼쪽)의 그랑프리 시리즈 경기 장면.

차동민은 9번의 그랑프리 대회 중 2014년 중국 수조우 그랑프리에서 2위를, 그리고 같은 해 별들의 잔치인 멕시코 깨레따로 그랑프리에서 당시 랭킹 1위 우즈베키스탄의 자수르 바이쿠지예브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5년 그랑프리 무대는 차동민에게 쓰디쓴 실패의 연속이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많은 팬들에게도 실망스러운 무대였다.

한국체대 후배이자 올림픽 자동출전권을 놓고 급부상한 경쟁자인 삼성에스원 조철호가 급부상하면서 많은 말들이 차동민, 그리고 주변에 쏟아졌다.

“그랑프리서 매번 패하면서 부상관리도 잘 되지 않았고, 솔직히 자신감도 떨어졌다. 내가 자동출전권을 따도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지 정해진 규칙도 없었다. 국내 선발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왼쪽 골반 부상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주변에서 오가고, 국내에서 내 부상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서운함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더 안타까웠던 것은 사람들이 차동민의 겉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차동민의 마음 안에서 어떤 일들이, 어떤 깨달음이, 어떤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지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술은 단조롭지만 변수가 많은 해외 선수들을 상대로 태권도 돌려차기의 교과서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오른발 몸통 돌려차기를 스스로 묶고 왼발 위주로 경기를 뛰어야 했다. 항간에서는 차동민의 오른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차동민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많이 노출이 되어 있고, 상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상황에서 내 오른발은 어느새 약점이 되어 있었다. 그랑프리 무대에서 많은 경기를 졌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경기 하나 하나가 깨달음이었고, 강해지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운동선수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 욕심과 야망이 있고, 설사 그것이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도 나는 내 스케줄에 따라, 실패에 대한 극복과 깨달음을 통해 하나 하나씩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기간 역시 그동안의 경험에서 온 나만의 스케줄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다.

“믿고 지켜봐 주시면 실망은 없다”

“차동민은 주변에서 착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너무 착한 성격 때문에 오히려 경기력에 지장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차동민이 “늘 그런 말들 듣고 살았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때도 내가 그렇게 착해 보였나?”라며 반문한다.

차동민 웨이트 트레이닝 장면.

차동민에게 독한 마음과 즐거운 마음은 모두 같다.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독한 마음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소년 시절부터 가정이든, 학교든 화목하고 즐거운 관계를 갈구하는 마음이 컸다. 차동민에게는 아팠던 개인사 탓인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커졌다.

다만 평소의 선한 성격이 경기에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주변사람들의 편견일 뿐이다.

차동민에게 리우올림픽은 결국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한판 승부다.

“어쩌면 나는 이번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덤으로 얻은 것 같다. 올림픽 출전 방식이 바뀌면서 마지막 기회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 기회가 그냥 올림픽에 한 번 더 나가는 식으로 사람들이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노골드, 참패, 중량급 침몰, 근성 실종 등 한국 태권도에 쏟아진 그동안의 평가에 대해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을 세우는 기회를 내가 만들겠다. 차동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리우올림픽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은퇴와 함께 확실하게 ‘차동민’이라는 이름 석자를 남기고 떠나겠다. 믿고 지켜봐 주시면 실망은 없다”

기사를 마치며...

1년 6개월 여 전, 멕시코 깨레따로 그랑프리파이널 결승전을 앞두고 경기장 밖에서 차동민을 만났다. 노트북에는 이미 ‘차동민, 그랑프리 첫 金금 파이널서 쏘아 올리며 부활’이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차동민에게 “이미 기사 제목 써 놓고 나왔다. 기사 제목 바꾸게 하지 마라”며 농담 섞인 바람을 전했다.

8월 20일(현지시각), 리우올림픽 태권도경기 마지막 날 마지막 결승전에 앞서 노트북에는 “차동민, 한국 태권도 심장에 ‘차동민’을 새겼다”라는 제목을 미리 써 놓아야 할 것 같다.

멕시코시티 그랑프리 파이널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차동민(왼쪽 세번 째).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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