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제대회에 어떤 전자호구를 사용할 것인가의 이슈는 공인업체 간 기술적 차별성, 그리고 객관적인 기술의 우열만으로 집중되거나 평가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사실상 리우올림픽 전자호구 선정 과정에서 업체 간 기술적 경쟁을 통한 평가는 구호에 그치고 말았고, 누구도 객관적일 수 없는 이해관계의 집산과 소모적인 논쟁만이 불거지던 중 지난 1월 29일 스위스타이밍이 대도 전자호구를 선택했다는 발표가 났다.

지난해 멕시코 깨레따로 월드컵단체대항전서 전자장비 오류로 경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되자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코트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

올림픽 랭킹포인트 80점, 각 체급 단 8명의 선수만이 출전하는 그랑프리파이널 첫날은 전자헤드기어서 헛득점이 속수무책 터져 나와 경기가 중단되기 일쑤였고, 몸통서는 한번 공격에 2점이 올라가는 고질적인 문제가 또 반복되었다.

한 번의 몸통 공격에 2점을 빼앗긴 팀 코치는 비디오판독 신청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에서 결국 경기가 끝난 후 본부석에 항의했다.

월드컵단체대항전 준결승 및 결승경기 당일에는 대도 전자호구 및 헤드기어 시스템이 무선 송수신을 포함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작동이 되지 않아 경기가 지연되고, 생방송으로 이 대회를 편성한 여러 방송 스케줄이 줄줄이 취소되는 최악의 사고가 터졌다.

결국 대회는 예정된 시간을 2시간 여 훌쩍 넘겨 일반호구로 치러졌고, 몇몇 팀은 일반호구 사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기까지 했다.

무선 송수신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대도는 경기운영 시 수동으로 무선송수신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 일정시간 이상 무선송수신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람이 직접 경기를 중단시킨다. 그러나 이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할 경우 실제 원활하게 무선송수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 채 경기가 그냥 진행된다. 실제 이로 인해 맨체스터 그랑프리시리즈서 머리득점이 19초가 지나 표출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무선 송수신에 대한 문제는 대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디다스-KP&P 역시 지난해 카자흐스탄 그랑프리시리즈서 반복적으로 무선 송수신이 끊겨 경기가 수차례 지연된 바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아디아스-KP&P의 경우 무선 송수신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전광판에 'PAUSE'가 뜨고 경기가 중단된다.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WTF의 미온적인 태도 탓이 크다. 전자호구 기술 공인 사양도 없는데다가 문제가 터져도 이에 대한 강력한 개선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만 넘기면 된다는 식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개선 방향, 그리고 책임 소재에 대한 강력한 대책도 없다.

멕시코 깨레따로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대도 박천욱 대표는 코트 위에 설치된 LED 전광파서 나온 고출력 전자기장파의 간섭, 할로겐 조명의 전파 흡수, 업그레이드한 전자헤드기어의 민감성, 대기석 선수들의 실수 등 다양한 해명을 했지만 아직까지 WTF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나 대책, 그리고 책임 소재는 쉬쉬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해당 문건을 손에 넣은 대도는 아디다스-KP&P의 공인비 납부 지연 문제에 대해 당시 터키 기술위원회 측과 WTF 서울 본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공인비 납부가 완료 되지 않았는데 공인 연장을 해 준 것이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다.

문서 유출의 의혹과는 별도로 대도 입장에서는 전자호구 등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대업체의 공인비 납부 지연에 대해 항의할 만한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WTF가 영세업체에 대한 분할납부와 납부계획서 첨부, 공인업체 간 경쟁을 통한 장기적 기술 발전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공인시스템, 그리고 공인계약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더불어 전자호구 문제를 제외하더라고 유출된 문서에는 그동안 각 경쟁업체 간 현금 및 현물 스폰서십 내용도 함께 담겨있다고 알려져 잠재된 갈등 요소도 적지 않다.

공인제품의 기술과 관련해 타 종목을 살펴보자면 펜싱의 경우 올림픽 최초로 전자 채점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대한펜싱협회에 따르면 ‘세부 종목에 따라 강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공인된 제품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검사대만 통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제연맹으로부터 공인된 업체라면 어느 것을 사용하더라도 선수들의 경기력과 기술발휘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WTF 역시 2013년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에 전자호구 장비 업그레이드 용역을 맡긴 바 있다. 전자호구를 기준으로 기술적 스펙을 일치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터키 기술위원회 당시 리우올림픽 등 주요대회 전자호구 업체 선정이 기술에 대한 평가없이 진행되자 전자호구 장비 업그레이드 용역을 맡은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 얀 안데슨 만손 박사가 “이럴 거면 우리에게 왜 용역을 맡겼느냐”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전자호구 업체 선정이 기술력과는 별도로 이루어졌음이 반증된 셈이다.

<양택진 기자>

양택진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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