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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을 열며] 이 가을에 태권도를 위해 무엇을!
  •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 승인 2006.11.06 09:56
  • 호수 521
  • 댓글 1

예부터 가을의 절기에 화두가 되는 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가을은 독서의 계절 또는 사색의 계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이 시대 이삼십대 세대의 가을적 화두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인데도 소슬한 가을 달빛이 내리는 길을 걷다보면 온갖 상념에 젖게 되고 또 단풍이 들어 곧 생명을 다할 잎들의 향연에 나는 마냥 즐거움보다는 우울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때로는 영원히 만나볼 수 없는 벗들이 그리워진다.

독일 철학자 칸트가 일생동안 찾아간 과제는 네 가지로 집약되고 있다. 즉 “나는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그리고 결국 사람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다.

칸트는 이렇게 네 가지의 물음을 제기하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 이것들은 모두 인간학의 범주에 포함시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세 가지 물음은 마지막의 물음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결국 철학의 모든 물음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에 있다.

태권도계에도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 가을에!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태권도’ 개념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할 때, 도대체 우리의 태권도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전통무예, 심신수련문화, 입시의 전략, 올림픽종목 등등.

초등연맹이 대한태권도협회에서 퇴출되는 현상을 지켜보며 우리는 그것과는 전혀 무관해도되는 것인가, 국회에서 다루게 될 태권도 특별법을 중심에 두고 태권도진흥재단과 국기원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관계에 처해있는 듯 비쳐지는 데, 정말 그런 것인가 라는 것에 그것도 나와는 무관하다고 단정해도 좋은 것일까?

일전 ‘해외 한인태권도 사범(지도자) 수기공모’ 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70편에 이르는 수기(手記) 작품에는 사범들의 애환이, 간난(艱難)의 세월이, 해외 태권도 보급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애환과 간난을 위해 나도 내 젊음을 송두리째 태권도 보급을 위해 바쳤기 때문에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을,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다.

지난주에 내가 몸담았던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에 아내와 함께 십년 만에 다녀왔다. 여행 목적은 그곳 티롤태권도협회의 3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항공일정으로 여로(旅路)에 상해에서 일박하며 박종한 사범을 만나 변화하는 거대 중국 태권도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목적지 삼십 주년 기념행사(10월 12일)에서 그 당시 내게서 태권도를 배운 숱한 제자들과 만남의 기쁨, 당시 어려웠던 비승인종목의 태권도협회를 위해 고난을 같이 한 협회간부들을 만나보니 감회가 깊었고, 70여 편의 해외 사범 수기 속의 주인공이 ‘나’일 것이라는 착각도 갖게 됐다.

그리고 ‘오스트리안 오픈 품새 2006’ 대회(10월 14일, 쿠프슈타인)를 참관하기도 했다. 뮌헨에서 달려온 서윤남 사범은 특유의 전통 바이에른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며 주춤 가방에서 빛바랜 컵 하나를 꺼냈다.

컵에는 "TKD Festival 1985. 11. 27" 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내게 유럽 품새 경기화 시효의 공을 치켜세웠다. 그날 저녁 독일 박수남 사범(세계연맹 부총재)도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들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가르침에 맥주잔을 많이도 비웠다.

정말 태권도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걸핏하면 우리는 태권도인(人)이라는 긍지를 앞세운다. 태권도인의 ‘긍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태권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삼가야 할 것인가를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11월 초에 무주에서 ‘태권도한마당’이 열리게 된다는 소식이다.

수기공모의 입상자들이 입국하여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주에 펼쳐질 눈앞의 ‘태권도공원’(가칭)의 성스러운 터전을 거닐어 보는 기회도 갖게 될 듯싶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가슴으로 맞이하자.

가을이 시방 저토록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데 우리는 진정 태권도(유관단체)에 바랄 것이 무엇일까. 그에 앞서 우리는 태권도를 위해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태권도 세 기관(국기원, 대태협, 세계연맹)에 무엇을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가를 이 가을에! 사유의 숲길을 찬찬히 걸으며 곰곰이 제 몫의 의무를 새겨볼 수 있어야 할 듯하다.

내가 태권도계에서 바라기에 앞서 내가 진정 태권도를 위해 무엇인가를!, 그리고 진정 태권도인 우리 존재는 무엇인가를....... 우리는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성의 빛에 의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성찰할수록 오늘날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태권도의 객관적 존재를 보다 향상시킬 수 있을 듯하다.

이경명 전문위원(태권도문화연구소장)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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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경 2006-11-11 10:49:13

    태권도 앞날의 고뇌의 화두에 청춘인생 바친 경험으로 명쾌한 수상 같은 답을 주셨습니다.
    필자 개인과 태권도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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