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용어를 정립하자는 목소리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현실성있는 추진방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와 관련된 용어의 정립은 태권도교본으로 인해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정리돼 있는 듯 보이지만 태권도의 활동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국기원은 지난해 태권도교본 수정증보판을 발간하면서 부분적으로 태권도 동작들의 용어를 정립했다. 하지만 수정증보판 발간과는 상관없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태권도 용어들은 태권도인들에 의해 아무렇게나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교본에 명기된 용어조차 몰라 

현재 태권도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태권도 용어들은 상당부분 국기원에서 제작한 태권도교본에 명기돼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부주의와 편의에 따라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얼굴, 몸통, 아래는 상단, 중단, 하단으로, 뒤후려차기(온몸돌려후려차기)는 뒤후리기, 뒤돌려차기, 회축으로, 내려차기는 내려찍기, 도끼찍기, 상단찍기 등 잘못 불리는 용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품새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 동작을 비롯해 아주 기본적인 용어들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태권도인들이 많다.

승(품)단 심사에서 기술적 측면의 평가에만 치중하다보니 태권도 용어에 대한 관심은 적어질 수밖에 없고, 고단자의 경우에도 태권도 용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겨루기 대회를 출전하는 선수들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대회 출전에만 전념하다보니 기본동작, 품새 등의 수련은 전무할 뿐만 아니라 용어 자체를 이해하는 선수들도 거의 없다.

일부 태권도장 지도자들은 태권도 동작을 몸으로 표현하면서도 정작 용어는 몰라 대충 부르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본에 없는 태권도 용어도 많아 

국기원이 발간한 태권도교본 수정증보판에는 겨루기와 관련된 태권도 용어들이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발차기 용어에서는 돌려차기, 뒤차기, 후려차기, 내려차기 등 기본 발차기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이 자주 사용하는 동작들임에도 용어에 대한 설명이 없다.

겨루기 경기에서 공방을 위해 발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동작은 규정한 용어가 없어 스텝, 짓기, 발놀림 등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또 빠른발, 앞발, 뒷발, 런너, 컷트발 등의 발차기 용어들도 정립돼 있지 않다보니 마구잡이로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시범용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교본에는 태권도 시범에 대해 개요, 의의, 구성, 프로그램 등이 나와 있지만 고작 10페이지(교본 총 789페이지)에 불과하고, 프로그램에 명기돼 있는 용어들은 자세한 설명이 첨부되지 못해 두발당상 4방축, 쌍발고축, 사과회축, 모둠발 높이차기 등의 용어들은 일반인들은 물론 태권도인들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또 각종 시범단의 단원들 역시 시범 동작의 용어가 정립되지 않다보니 빽주가리, 외발턴, 540도 등 근원을 알 수 없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용어 정립위한 연구위원회 발족 필요 

태권도 용어 정립은 국기원을 중심으로 태권도 기구 관계자, 태권도 학자, 국문학자, 태권도계 일선 지도자, 언론 관계자 등 각계의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하는 '태권도 용어 정립 위원회'를 발족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연구위원들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태권도 용어들이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편의상 부를 수 있는 용어들도 첨부하는 한편 세미나를 열어 태권도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태권도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집을 발간, 국내 일선 태권도장은 물론 세계 각 국가협회에 보급하고 지속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

특히 태권도 용어집은 태권도교본과는 별도로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시범 등으로 나눠 구분해 발간하고, 해설집을 첨부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 국기원 연구소, 재정·인원 확충해야 

태권도 용어 정립은 태권도의 근간을 이루는 학술연구들과 함께 중요하게 다뤄져야할 연구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태권도 학술연구를 주요 목적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기원이 태권도 용어 정립에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기원은 올해 연수원내에 학술연구를 전담하는 연구소를 설치했다. 연구소는 태권도 정신 · 역사 연구를 시작으로 태권도장 활성화 연구, 경기용 품새 개발 등 중요한 연구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시급성을 인지하면서도 태권도 용어 정립에 관한 연구는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국기원 연구소에는 연구소장과 전임연구원 단 2명만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재원확보도 어려운 실정이다.

단(품)증 발급, 승(품)단 심사, 지도자 연수와 함께 태권도 학술연구가 국기원의 중요한 역할임을 생각해보면 연구소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권도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국기원의 목적사업 중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기에 재정과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 매스컴에도 정확한 태권도 용어 알려야 

지난 4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열렸던 제1회 세계품새선수권대회.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 일간지들은 물론 이번 대회를 후원한 삼성전자까지 세계'품세'선수권대회라 표기했다. 언론의 태권도 용어 사용 실태다.

태권도의 상징적인 경기로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기억되고 있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종목 남자 헤비급 결승전에서 문대성의 뛰어 뒤후려차기(뛰어 온몸돌려후려차기)를 상세히 보도한 국내 언론들은 거의 모두 문대성의 발차기 동작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각종 태권도 대회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도처에서 발견돼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태권도 용어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품새, 겨루기 등 각종 태권도 경기의 용어를 모르다보니 태권도 용어 사용을 피해 미사여구로 대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태권도 용어 정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교본에 있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매스컴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

매스컴의 잘못된 용어사용으로 인해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반 대중들은 신문, TV, 라디오 등을 통해 보도된 확인되지 않은 태권도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매스컴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태권도교본 발간보다도 클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따라서 태권도 용어를 정립한 이후에는 태권도 용어집을 각 언론사에 보급하는 한편 잘못된 태권도 용어를 사용하는 보도가 있을 경우에는 시정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 태권도 용어 교육 강화 

태권도는 가르치는 스승에 대한 예의와 추종 의식이 각별한 무도이기 때문에 사범들이 사용하는 태권도 용어들은 태권도를 배우는 수련생들에게 그대로 세습된다.

따라서 태권도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구인 국기원이 태권도 용어에 대한 교육과 시험을 강화해야만 태권도 용어 정립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특히 태권도 3급 사범 교육에서만큼은 태권도 용어를 철저히 교육하고 교육 마지막날 치르는 시험에도 포함시켜 확실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한 태권도 지도자가 가장 많이 양성되는 대학의 태권도학과에서도 태권도 용어에 대한 교과과정을 신설해 충분한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권도인들 개개인이 태권도 용어 정립의 필요성을 깨닫고 올바른 용어사용을 위해 노력해야만 태권도의 용어 정립이 가능할 것이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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