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범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나라는 미국이다.

대한태권도협회가 지난 70년대 해외 태권도 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36개국에 7백여 명의 한인 사범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미국에는 300여 명의 사범이 활동했고, 월남이 123명, 서독이 40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태권도가 미국에 보급되던 초창기, 미국인들은 태권도를 일본의 가라테와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중국 무술인 쿵푸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초창기 한인 사범들은 어렵게 도장을 개관해 놓고도 현지 수련생들을 모으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본 가라데' 혹은 '코리안 가라데'라는 문구로 홍보하기도 했다.

'코리안 가라데'라는 이름을 빌려 도장을 개관하고 태권도를 가르쳐야만 했던 한인 사범들의 자존심은 몹시 상했다. 한인 사범들은 점차 태권도를 배우는 미국 현지인들에게 한국말로 구령을 붙이게 했으며, 태권도 동작도 한국어를 사용하게 했다. 또 한국의 역사와 예절 등을 가르치고 도장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걸어 놓았다. 이는 한국인과 태권도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다.

초창기 미국에 태권도를 보급한 사범들은 대부분 청도관(靑濤館) 출신이 많았다. 60년대 초 미국에 터전을 잡은 대표적인 사범들은 이준구, 손덕성, 이행웅 등이다.

1971년 12월 3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운 인구는 21만여 명이 넘었다. 워싱톤과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만 손꼽아도 태권도 인구는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태권도가 착실하게 성장한 곳은 워싱톤 DC였다. 이곳의 사범들은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생활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범이 이준구, 이운세, 김기황, 심상규, 이영국 사범이다.

1957년 제대 뒤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 토목과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간 이준구 사범은 58년 4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열어 유학비를 벌면서 태권도를 보급했다. 62년는 워싱턴에 '준리 태권도'라는 도장을 개관, 사업가 교수, 정치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유명 인사가 됐다.

김기황 사범은 심상규 사범과 함께 63년 워싱톤과 디트로이트에 각각 정착, 미국 동-중부에 태권도 바람을 조성했다. 김 사범은 한인 태권도 사범으로는 두 번째로 워싱톤 근교에 무덕관 이름으로 도장을 열었다.

외국어대학 영어과를 다닌 심상규 사범은 미8군 부대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다가 63년 미국에 건너갔다. 심 사범은 대한태권도협회를 통한 해외 파견사범 외무부 등록 1호로 알려졌다. 재미언론인 이호성씨는 "도장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미국식 계약제를 제일 먼저 도입한 사람은 심상규였다"고 평가했다.

이원국 사범은 이영복, 이영호 형제들과 함께 워싱턴에서 7개의 도장을 운영하며 태권도 대회를 개최하는 등 태권도 붐 조성에 기여했다. 86년에는 미국 전역의 유명 사범들을 초청, 시범대회를 열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청도관 제2대 관장을 역임한 손덕성 사범은 63년 3월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손 사범은 67년 세계태권도협회를 창립했는데, 이것은 미국 안의 청도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손덕성의 요청으로 미국에 정착한 강서정 사범은 1969년 한인 상가가 밀집해 있는 브루클린에 도장을 개관했다. 강 사범은 77년 국제태권도연맹 부총재를 역임했으나 최홍희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러 가자고 제의하자, 단호하게 거절하며 국제태권도연맹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뉴욕에는 강서정, 조시학, 신현옥 사범 등이 도장을 개관해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밖에도 김대현, 권오덕, 김상수, 심상규 사범 등은 학교와 공공단체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대현 사범은 3개의 도장을 운영하면서 1만여 명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또 Long IsIand대학교와 C.W.Post대학 등에서 태권도 강사로 활동하면서 사업에 뛰어 들어 뉴욕한인실업인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일회 사범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 71년 미국 펜실베니아로 건너가 태권도 보급에 힘써온 그는 7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75년 로우돌핀 고등학교 체육 정규과목에 태권도를 채택시켰다.

일리노이주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Journal Star 紙는 84년 김수곤 사범의 활약상을 크게 다뤘다. 또 이 지역의 다른 언론도 김 사범의 태권도 동작 사진을 기사와 함께 싣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74년 고려대 재학 중 미국 국무성 초청 학생대사로 선발돼 미국에 건너간 그는 태권도 보급에 기여했다.

85년 6월, 122명의 미국인 태권도 종주국 방문단을 인솔하고 내한한 이종남 사범은 "미국 태권도 인구는 1천1백만 명으로, 1천여 명의 한인 사범이 본관과 지관을 포함 3천4백여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국내 도장은 2천5백여 개였다.

이런 가운데, 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 태권도 실정에서 남궁명석, 김영숙 한인 여성 사범이 눈길을 끌었다. 70년대 초 각종 대회를 우승했던 남궁명석 사범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74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이화여대와 성신여대에서 태권도를 가르친 김영숙 사범은 "범죄가 많은 미국에서 태권도는 여성에게 무리가 없는 호신술"이라며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 밖에도 오하이오주 송영길 사범, 노스캐롤라이나주 한국형 사범, 뉴저지시티의 장순길 사범, 오클라호마주의 이희섭 사범, 텍사스주의 안대섭, 정진송, 임규붕, 추교승 사범, 필라델피아 이종세 사범, 마이애미주 서중근 사범 등이 미주 전역에서 활동했다.

또 남태희, 김유진, 강명규, 조시학 등 원로 사범들과 '태권도 경기 프로화'를 위해 노력한 김영치, 이승형, 조남수 사범, 그리고 미국태권도연맹(USTU) 회장을 역임한 이상철 사범을 비롯해 박연환, 김광웅, 정영택, 김일호, 이병무, 양동자, 이근화, 박창학, 김형석, 배원근, 조재형, 최덕경, 최용길, 강명학, 유진행, 한광수, 최응길, 이현곤, 박천재, 허흥택, 전영호, 정상복, 강성주, 홍원기, 김한영, 최복성, 이지호, 최용길, 남정구, 박찬호, 김철회, 김순호, 조규일, 이준혁, 김인선, 김제경 사범 등도 태권도의 위상을 떨치는데 기여했다.

한편 청도관 창설자 이원국 원로(타계)를 비롯해 송무관 창설자 노병직 원로, 창무관 관장 이남석 원로(타계), 오도관 창설의 핵심 멤버 남태희 원로 등도 미국에서 거주했다.

서성원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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