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이 전자호구 생산업체인 라저스트(LaJUST)와 공인계약을 체결하면서 각종 대회의 전자호구 도입이 가시화됐다.

라저스트가 각종 경기대회에 필요한 물량의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물품공급 준비작업을 완료함에 따라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전자호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WTF가 정리해야할 과제들이 많아 전자호구가 성공적으로 태권도대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WTF의 부수적인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전자호구 시연회를 보고 있는 조정원 총재(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를 비롯한 WTF 집행부 관계자들.

WTF 의지가 제작 소요시간 결정 

라저스트는 공인계약 체결 이전부터 대량생산에 필요한 금형제작, 외피(PE폼 · 봉제)생산, 센서, 전자 PCB 회로 장착 등 전자호구 각 부분의 부품 발주에서 최종 조립과정까지 구체적인 생산 과정에 대한 준비를 완료했다고 주장해왔다.

공인계약이 체결된 현재 라저스트는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초 투자금을 투입, 대회에 사용할 수 있는 전자호구의 제품 생산작업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라저스트는 대량의 전자호구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최소 5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제작과정과 각각의 전자부품을 생산하고, 이를 취합해 조립하는 복잡한 공정으로 인해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5개월이라는 제작기간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호구 제작의 시작단계라고 볼 수 있는 전자호구의 외형 디자인이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아 금형제작이 늦어져 전자호구 제품 제작기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디자인 결정의 지연은 WTF 전자호구특별위원회와 체육과학연구원이 라저스트의 외형 디자인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라저스트는 WTF가 디자인 개선안을 제시하면 그대로 금형제작에 착수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까지 WTF는 디자인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WTF는 타격강도에 의해 유효득점으로 인정되는 전자호구의 특성상 각 체급에 맞게 유효득점의 최대 측정값(파워수치)을 결정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조치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 전자호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내년 말부터 열릴 예정인 대륙별 지역예선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켜야만 한다.

결국, WTF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만 제작기간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대회에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호구 제품 단가 책정도 문제 

전자호구가 현재 각종 대회에 사용되고 있는 일반 호구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리라는 예상에는 별 이견이 없다. 라저스트는 가격 책정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면서도 가급적 낮게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자호구는 가격에 따라 일선 태권도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가격 문제는 누구에게나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한태권도협회(KTA)가 지난해 3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 처음 도입했던 손 · 발등 보호대 역시 일선 지도자들이 가격에 부담을 느낀다며 이의를 제기, 결국 KTA는 청 · 홍으로 색상이 구분돼 있던 손 · 발등 보호대를 단색으로 교체했던 전례가 있다.

전자호구는 태권도 겨루기 경기의 방식을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요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항공료가 없어 각종 대회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저개발국가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만약 저개발국가들이 전자호구 사용을 하지 못할 경우 경기력의 불균형이 초래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따라서 전자호구의 가격을 보다 현실화하고, 저개발국가에 대한 별도의 지원책도 강구해야만 일반호구에서 전자호구로의 전환이 수월해질 것이다.

전자시스템 판정에 대한 인식전환 필수 

전자호구 도입을 찬성하는 태권도계 인사들도 전자호구 사용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태권도 경기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자호구는 강도(파워수치)에 감응하는 전자시스템에 의해 판정이 이뤄진다. 따라서 현재 청각과 시각에만 의존하고 있는 일반호구의 판정시스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호구가 경기에 도입됐을 때 기계적 결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코칭스태프, 선수, 심판 등 태권도 관계자들과 일반 대중들이 전자호구 도입에 따른 시스템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할 경우 판정시비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정작 전자호구는 정확하게 유효득점을 가려내지만 기계라 할지라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어 판정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WTF는 전자호구 도입으로 바뀌는 시스템을 태권도 관계자를 비롯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충분히 설명하고 홍보해 올바르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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