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수, 이길 수 없었나' 남자 -58kg급에서 이대훈에게 역전당한 이길수가 머리 공격이 맞지 않았다며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세컨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머리공격을 맞지 않았다며 주위에 도움을 청하던 이길수(용인대)가 끝내 영상판독 요청도 해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영상판독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은 세컨드에게만 주어지지만 이길수의 세컨드석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태권도 선수들에겐 가장 중요한 올림픽 국가대표 평가전. 올림픽 출전권이라는 큰 타이틀이 걸린 대회라 대한태권도협회(KTA)도 종전과 다른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영상판독용 카메라. 과거 앞뒤 두 대만 설치했던 카메라를 세 대로 늘려 안정적인 삼각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미터 이상 높이의 이동식 무대를 설치해 그 위에서 영상촬영이 이뤄지도록 했다. 좀 더 높은 각도의 영상을 확보하겠다는 의도.

첫 경기에서 남자 -58kg급 이길수와 이대훈이 맞붙었다. 석승우까지 같은 학교여서 용인대가 티켓을 확보해놓은 체급. 그런데 세컨드가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규모의 대회에서는 같은 소속 선수끼리 대결하게 되면 지도자가 코트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컨드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경우가 다르다. 국가대표를 결정하는 경기에서 세컨드로서의 지도 역할은 포기한다 해도 선수를 위해 영상판독을 요구할 기회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려한 대로 영상판독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이대훈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초반부터 몸통 득점을 연결하면서 3회전까지 6대 1로 앞서 나가던 이길수가 3회전 머리공격을 두 번 허용하면서 역전패를 당했다. 첫 번째 실점에는 이길수도 수긍하는 듯했지만 수초를 남겨놓고 일어난 두 번째 머리 공격의 실점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맞지 않았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영상판독 요청 깃발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방법은 없었다. 결국 이길수는 고개를 떨구고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실제 적중 여부를 떠나 이길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상황이었다.

반면 여자 +67kg급에서 이인종, 박혜미, 안새봄, 세 명의 삼성에스원 선수끼리의 경기에 임성욱, 박만성 코치가 세컨드로 투입됐다. 물론 작전 지시 등은 일체 없었고 입을 굳게 닫은 채 돌부처처럼 앉아만 있었다. 그러나 이인종과 안새봄의 경기에서 이인종이 얼굴 공격에 대해 영상판독을 요청한다는 제스처를 보이자 임성욱 코치는 지체없이 깃발을 뽑아 심판에게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선수의 영상판독 요청을 가능하게 해주기 위한 팀의 배려였다.

이후 남은 두 경기에서도 용인대는 세컨드를 투입하지 않았고, 삼성에스원은 말없는 세컨드가 자리를 지켰다.

용인대가 특정 선수를 선발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소속 선수들의 영상판독권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면 세컨드를 투입하지 않은 판단은 큰 실수였다. 특정 제자를 편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공평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소속팀과 지도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신병주 기자>        

신병주 기자  sign2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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