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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17>매화 사랑 퇴계 서원에 화사한 모란꽃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10.21 22:44
  • 호수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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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陶山書院) -4]

도산서원의 ‘도산(陶山)’. 지명(地名)이다. 굳이 꼬집어 말한다면 산 이름. 따라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도산이라는 이름의 연원(淵源)을 뒤적여보고 싶어진다.

‘도산’의 도(陶)는 질그릇 또는 질그릇을 굽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옛날 그 산 속에 질그릇 굽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가능성은 좀 약해 보인다.

그보다 도(陶)는 두 겹으로 된 언덕, 구릉을 말한다. 중국의 고전에 첫 번째로 이루어진 언덕은 돈구(敦丘), 두 번째로 이루어진 것은 도구(陶丘)라 하였다[再成爲陶丘]. 구(丘)와 산은 같은 의미니까 ‘도산’이라 하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럴 듯하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조금 다른 소박한 풀이. ‘다시 또 하나의 산’을 순 우리말로 줄이면 ‘또 산’이 된다. 이를 부드럽게 한자(漢字)로 써서 ‘도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퇴계(退溪)’라는 단어도 원래 한자 표기가 없이 ‘두계’ 또는 ‘토계’라고 불리던 시내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서원 안으로 첫발을 내딛자 눈에 들어오는 모란꽃 정원.
이제 서원 안으로 들어선다. 밖에서도 구경하고 생각할 것이 많아 꽤 긴 시간을 이곳저곳에서 머물렀다가 마침내 서원 안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으로, 그림으로 수없이 보아 온 도산서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어? 그런데 왜 이렇지? 서원 안의 풍경은 예상했던 모습과 너무 다른 느낌을 풍겨주고 있었다. 건물 때문이 아니라 모란꽃 때문이었다. 뜰은 온통 자주색 물결. 아래쪽 평지부터 비스듬한 언덕의 모든 정원이 전부 모란 일색이었다. 적어도 퇴계 선생을 모신 서원이라면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오성(悟性)의 솔바람, 또는 매화향 은은한 지성(知性)의 산들바람이 불기를 기대했는데, 요란한 모란꽃 덕분에 에로틱하기조차 한 감성(感性)의 함성이 등천하고 있었다.

하하! 뭐, 나쁠 것이야 있겠는가. 세상 모든 일이 일정한 공식(公式)이나 일반적 통념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다만 의외여서 덜컥 의표를 찔린 기분이었을 뿐이다. 70세의 퇴계 선생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저 매화나무에 물 주라”였고 평소 매화를 지극히 아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도산서원만큼은 매화나무를 많이 심었어야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도산서원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서당. 벽에는 도산서당(陶山書堂), 마루엔 암서헌(巖栖軒)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널리 정평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박순(朴淳)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계를 보내며 지은 시(詩)가 있다.

 고향 생각 사슬처럼 끊임이 없어
 이 아침 말 타고 한양을 떠나시네
 봄추위에 영남 매화 피지 않았으리니
 늦은 꽃 임 오시길 기다리겠지

이래저래 좀 아쉽긴 해도 모란 역시 의미는 있을 법하다. 모란은 그 이미지가 다양해 열 가지 이상의 이름으로 불리거니와 가장 대표적인 상징어(象徵語)는 ‘화중왕(花中王)’, 꽃 중의 왕이다.

그 느낌을 짧게 뭉뚱그리면, 부귀(富貴), 화려함, 요염한 아름다움 등이다. 이백(李白)은 노래했다. “이슬 머금은 한 송이 모란꽃을/ 무산(巫山)의 비구름에 견줄 것인가/ 옛날의 누구와 같다고 할까/ 한나라 비연(飛燕)이면 혹시 모르리” 둘째 줄 ‘무산의 비구름’이 무슨 뜻인가. 남녀가 즐기는 것을 말한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이다. 중국 초(楚) 양왕(襄王)의 꿈 이야기에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에로틱한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아무튼 생전에 고결하고 학문에만 정진하고 매화를 사랑하며 살다 간 퇴계 선생이기에 사후(死後)에라도 좀 반대되는 개념으로 위로를 해드리려는 뜻인가 생각되어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모란꽃 이우는 하얀 해으름
 강을 건너는 청모시 옷고름
 선도산(仙挑山)
 수정(水晶) 그늘
 어려 보랏빛
 모란꽃 해으름 청모시 옷고름

박목월(朴木月)은 그의 ‘모란 여정(餘情)’에서 모란의 이미지를 확 바꿔 깨끗한 동양화처럼 그려 놓았다. 김영랑(金永郞)은 다른 방향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내 가슴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해 고요히 지는데
 머ㄴ山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뜬 보랏빛
 내가 일흔 마음의 그림자

 한이틀 정녈에 뚝뚝 떠러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노코 갓슬줄이야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너무 유명하므로 인용은 생략)에서 영랑은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깊은 곳까지 모란을 안고 들어가 그 색깔만큼이나 짙은 정서를 토해 놓는다. ‘실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보람과 이상이 피어나는’ 때의 상징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이다.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도산서원은 원래 서당에서 발전하여 서원이 되었다. 퇴계의 연보(年譜)를 보면, 그의 나이 57세 때인 1557년 도산 남쪽에 서당의 터를 잡고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했다. 5년이 걸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때 지은 집은 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雲精舍) 두 채였다. 선생이 꼼꼼하고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었음을 그리 크지 않은 시설들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세 칸짜리 서당에서 선생이 거처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은 완락재(玩樂齋), 마루는 암서헌(巖栖軒), 농운정사의 공부하던 동편 마루는 시습재(時習齋), 휴식공간인 서편 마루는 관란헌(觀瀾軒)이라 이름을 지었고 건물 바로 옆에 자그마한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은 다음 정우당(淨友塘)이라 불렀다.

심지어 작은 샘에도, 사립문에도 모두 아름다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이 모든 이름은 중국의 고전에서 찾아내 그 기능과 모양에 맞게, 아주 시적(詩的)으로 지은 주옥같은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에 모두 아름다운 시를 지어 쓰다듬어 주듯 사랑의 손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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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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