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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⑫강과 산, 새ㆍ바람소리까지 껴안은 듯
[병산서원(屛山書院) -4]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9.05 10:40
  • 호수 738
  • 댓글 0

 병산서원 가 본 적 있는가.
 복례문 들어서며
 서애 선생 나직한 목소리, 기침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아리도록 붉은 배롱나무 꽃 아래서
 수백 마리 윙윙거리며 연주하는
 벌들의 합창 들어본 적 있는가.
 입교당 마루에 앉아
 만대루 기둥사이 열 폭 병풍 속
 강물 그윽이 바라본 적 있는가.
 그 강물 오후 햇빛에 부딪쳐
 물고기 떼처럼 수만 마리
 소란스레 반짝이며 일어서는
 그 물빛에 취해본 적 있는가.
  <김윤한의 병산서원>

 진정한 아름다움은 지혜와 똑같이 매우 간단하고 누구나 알기 쉬운 것이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말이다. 병산서원에 가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건축학적인 전문용어나 논리로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서원의 핵심 건물인 입교당
진(眞), 선(善), 미(美)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아름다움’ 속에서도 그것이 참된 것일 때 우리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왜 아름다운가? 어째서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법칙을 무리없이 천연덕스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세(山勢) 지형 강줄기의 흐름 소나무숲과 같은 모든 풍광과 심지어 새소리나 바람소리까지를 아우른 자연의 조화 속으로 병산서원은 살포시 들어가 안겼다. 그리고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한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그 사람의 성질과 완전히 일치되었을 때, 그리고 당사자가 자기의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 그 진가를 나타내는 법이다.” 프랑스의 스탕달이 ‘적과 흑’에서 한 말인데 병산서원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병산서원은 나대거나 들레지도 않아 겉모습뿐만 아니라 본성까지도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지니고 있으니 얼마나 탁월한가!

 얼마 전 미국의 건축 전문가 배리 버그돌이라는 사람이 병산서원에 들어서면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감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건물과 자연과의 조화를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의 대화’ 또는 ‘자연과 인간, 공간과 공간이 나누는 대화’라는 철학으로 풀어 설명했다고 한다.
 
 병산서원의 구조는 서원건축의 교과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필요한 기능은 모두 담아낼 수 있도록 빠진 것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넘치는 것도 없으며, 한 가지 기능이 특별히 강조되어 균형과 조화를 깨뜨리는 일이 없이 차분하고 알차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
모양이 단아하여 편안함을 안겨주는 복례문(復禮門)을 들어서면 휴식과 강학(講學)의 복합 공간이자 서원의 얼굴과도 같은 만대루(晩對樓)가 손님을 반긴다. 설명문이 잘 돼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2백 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축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百濟城樓)’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만대루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서원 안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당에 올라서자마자 뒤를 돌아 다시 만대루를 살펴보았다. 바깥쪽에서 볼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매우 넉넉하고 풍부해 보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려고 우쭐대는 맛이 전혀 없다.

 2층 누마루에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거기서 보면 강변 백사장과 만대루와 평행으로 흐르는 낙동강, 그 너머의 병산이 얼마나 구성지고 아름답게 보일지! 그러나 오를 수가 없었다. ‘안전점검을 위해 당분간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계단 위에 세워져 있었다. 쳇,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놔두는 것이 안전점검인가? 괜한 핑계겠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잠간 올라가 볼까? 보는 사람이 있으면 또 어때. 유혹이 강했지만 신사의 체면을 지켜야 했고 ‘병산서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참기로 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탁월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만대루
안마당에서 보면 좌우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보며 가슴을 열고 있다. 동재의 이름은 일신재(日新齋), 서재의 이름은 직방재(直方齋).

 ‘日新’이란 말은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전이장(傳二章)의 ‘湯之盤銘에 曰苟日新하고, 日日新하며 又日新하라’에서 따온 말임에 틀림없었다.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긴 글에 이르기를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 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뜻이니 배움의 집에 적합한 단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직방’은 그 원전을 알 수 없어 설명문을 유심히 읽어보았는데 거기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듣자하니 주역에서 차용한 말로 내면과 외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당 정면에는 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입교당(立敎堂)이 있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 원장이 유생들을 모아놓고 강론을 했던 곳이다. 이 강당의 동쪽 방은 원장이 기거하던 공간이며 서쪽 방은 교수들의 공간으로 요즈음의 학교로 치면 교무실에 해당한다.

 건물의 안쪽에는 입교당 간판이 걸려 있지만 바깥쪽에는 병산서원 간판이 크게 달려 있다. 이 액자 바로 밑에는 1미터 높이의 석조물이 서 있다. 이것은 정료대(庭燎臺)라 하는 것으로 밤에 불을 밝히던 장치이다. 야간 조명시설인 셈이다. 불길이 잘 일어나는 연료에 불을 붙여 교자상처럼 펑퍼짐한 윗부분에 놓으면 주위가 환해지는 간단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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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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