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WTF)이 지난 7월 베트남에서 비밀리에 개최했던 국제심판 관리부정과 관련한 상벌위원회의 결과를 한 달여 간 지연시키다가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지난 1월 국제심판관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착수, 2월 서초경찰서의 WTF 사무처 압수수색, 3월 국제심판제도개선위원회 회의, 4월 관련 사무처 직원 일부 구속, 7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결과 발표, WTF 상벌위 개최, 상벌위 결과 발표까지 장장 7개월 동안 계속된 국제심판 관리부정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자진사퇴, 정직 3개월, 보직이동, 경고 등 WTF 사무처 직원들의 징계조치로 마무리됐다.

WTF가 공식발표한 상벌위 결과는 베트남에서부터 무성하게 흘러나왔던 소문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상벌위 결과에 따른 징계조치의 형평성 문제, 국제심판제도개선위원회의 개선방안의 미흡 등 아직도 WTF의 심판업무에 대한 선명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왜 상벌위 개최를 비밀에 붙이고 결과 발표를 지연시키고 공식발표에서조차 실명을 밝히기를 꺼리는지, WTF 스스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말단 직원들에게 책임전가? 

상벌위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WTF 사무처를 떠난 직원은 유 모 계장 한 명뿐이다. 유 모 계장은 제6회 주니어선수권대회가 열렸던 베트남에서 사무처에 사표를 제출했고 지난달 21일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에 연루됐던 나머지 WTF 직원들은 정직 3개월, 보직이동, 경고 등 행정조치를 받았다.

이번 국제심판 관리부정 사태가 유 모 계장의 사표로 인해 일단락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유 모 계장 다음으로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직원 역시 김 모 계장이다. 이번 국제심판 관리부정 사태가 결국 말단 직원들에게 책임이 전가됐다는 인식이 들 수밖에 없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검이 밝힌 사법처리에서는 다른 직원들도 벌금형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상벌위에서는 비교적 경미한 처분을 받았다.

결국 상벌위 결과는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WTF 발표는 상벌위 결정이 어떤 기준에 근거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아 형평성 시비를 부추기고 있다.

문동후 WTF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WTF 자체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자료와 검찰 사법처리 결과를 근거로 결정한 사항"이라고 해명했지만 상벌위의 처벌 기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설사, 말단 직원들이 모든 부정을 저질렀더라도 이를 방치했던 상급 직원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 또한 상급 직원들의 지시에 의해 부정을 저지른 측면이 있다면 이를 가볍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지 등은 아직도 의혹을 떨칠 수 없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국제심판 행정시스템 개선은 뒷전 

WTF 사무처 직원들의 징계조치와 함께 밝힌 국제심판업무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국제심판 연회비와 교육비를 온라인 결제시스템으로 납부방법을 변경하고, 차등화 돼있던 심판 연회비를 내년부터 50달러로 단일화한다는 내용뿐이다.

이번 국제심판 관리부정 사태가 연회비, 교육비 등 납부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발생한 만큼 비용에 관련된 부분을 총무부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행정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은 긍정적인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심판 자격 취득 여부와 자격증 발급 등 개선돼야할 행정시스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미봉책으로 여겨진다.

지난 3월 WTF는 국제심판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또다시 국제심판 관리부정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WTF가 제시한 대책은 이번 상벌위 결과에서 밝힌 내용 외에는 없는 상태다.

WTF가 국제심판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했던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국제심판 자격증, 교육, 관리, 연회비, 선발과정 등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안들을 점검하고 관례로 이뤄져 부정이 아닌 것처럼 인식됐던 행정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부분들을 파악해 이를 개선하는 대책이 강구돼야 했다.

만약 WTF가 행정시스템 개선에 대해 계속해서 간과할 경우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행정시스템의 부실로 인해 또다시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시킬지 궁금하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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