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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⑩연꽃 같은 하회마을 기품서린 전통한옥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8.21 16:43
  • 호수 736
  • 댓글 0

[병산서원(屛山書院) -2]
 이중환(李重煥). 이름만 보면 요새 사람, 우리와 동시대 인물 같다. 좀 흔한 이름이라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조선 숙종 16년(1690)에 태어나 영조 32년(1756)에 세상을 떠난 18세기 때 실학자이다. 그가 ‘택리지(擇里志)’라는 책을 남겼다. 공자왈 맹자왈을 주로 달달 외우던 시절에 그것은 큰 파격이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이어서 인기를 끌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조선 8도의 역사 지리 지세 기후 산물 인물 취락 등을 다루었고, 후반부에서는 ‘살 만한 곳’과 ‘살 만하지 못한 지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요즘에 간행되었더라면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능가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회마을 양반촌
택리지 끝부분 계거(溪居)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 시냇가에 삶[溪居]은 반드시 영(嶺·높은 고개)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야 한다. 그래야만 평시나 난세(亂世)에 모두 오래 살기 적합한 것이다. 계거의 장소로는 영남 예안(禮安)의 도산(陶山)과 안동의 하회가 첫째다.” 그리고는 이 두 곳이 왜 첫 손가락에 꼽히는지 그 이유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하회마을은 그런 곳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마을 안쪽 조용한 강가에 품격을 갖추고 앉아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다양한 표정의 탈을 새겨놓은 나무기둥들이 맨 처음 손님을 맞이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살았을 전통한옥들이 아름답게 기품을 뽐내고 있다.

 피부관리를 받은 것처럼 지나치게 매끈한 기와지붕들이 예스러움을 조금 감소시키고는 있지만, 나도 모르게 조선시대를 걷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큰 길과 작은 길들이 자연스럽게 얽혀 있어 억지가 아닌 고풍(古風)을 높여 준다.

 서울 경복궁 근처의 옛 반촌(班村)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아,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환상이 갑자기 흔들렸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하회교회’가 1백50m앞에 있다는 안내판. 근처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나오는 소년. 화면의 모든 부분은 흑백으로 가라앉고 안내판과 자전거만 빨간색으로 움직이는 영화의 특수기법 같은 느낌이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하회마을은 서애 유성룡과 그의 형 겸암(謙庵) 유운룡이 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었다. 두 분이 가문을 크게 일으켜 풍산 유씨 자손들이 마을을 그들먹하게 채우고 있다.

 서애의 종택 충효당과 겸암의 종택 양진당(養眞堂)이 가장 두드러져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두 종택을 비롯해서 모든 집과 건물들이 잘 손질되어 있는데 ‘너무 잘한다고 한 것이 그만 민속의 원형보다 관광용으로 변질되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 입맛으로 끼어 있는 초가집들, 그 순박한 양념들이 기와집들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구경하는 맛을 돋우는 건 사실이나 그 관리에 좀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문을 바른 창호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어떤 집은 문이 아예 뜯겨 마루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당은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 폐허를 방불케 했다.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으되 대충 짐작은 된다. 이와 관련, 제안을 하고 싶다. 이처럼 집을 비워둘 바에야 임대를 해주면 어떻겠느냐 하는 아이디어이다. 거기서 전적으로 살림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므로 별장처럼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세부적인 임대조건은, 좀 특수한 집들이긴 해도 따져보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주요사항은 임차인이 집을 깨끗이 보존하는 일에 치중하도록 하는 간편한 방법이 기본이 되면 충분하지 않을는지.

 

   
강건너 절벽과 부용대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되면 발길이 자연스레 강변의 솔밭과 백사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참으로 멋지다
 강 건너편은 깎아지른 절벽과 부용대(芙蓉臺)
 백사장에 물새 발자국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온 새들인가
 쐐기꼴 글자[楔形文字]로 사연을 남겼네
 왔다 감이 아쉬워 감회를 적었는가
 무슨 공적(功績)을 세워 자랑하는가
 바람 불고 비오면 없어지겠지

 저만치 위쪽 기슭에 나룻배 한 척
 다정한 연인들이 강을 건너려고
 여유롭게 다가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물새 발자국처럼
 떠나가는 연인들처럼
 인생도 흘러가 사라지겠지
 역사의 백사장에 허명(虛名)은 남겨 무엇하리

 백사장을 나가 부용대에 올랐다. 여행하느라 며칠 등산을 못했더니 어디든지 오르고 싶던 터라 빨리 걸음을 옮겼다. 속도를 올리니 금방 몸이 더워졌다.
 부용대에 오르니,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용대’, 무슨 정자(亭子)의 이름인 줄 알았으나 절벽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부용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란 뜻이라 한다. 연꽃이라는 뜻의 부용(芙蓉)은 하회마을의 다른 이름. 그래서 마을의 형태를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즉 물 위에 떠있는 한 송이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심성이 둔해서 그런지 금방 둥그런 쟁반 같은 물 위에 떠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무척 아름다웠다. 연꽃보다 오히려 더 멋지게 보였다. 안내판을 보고 하회16경(河回16景)을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머문 이름들. 마을 안에 빈연정사(賓淵精舍) 원지정사(遠志精舍), 부용대 양쪽에는 겸암정사, 옥연정사. 부끄러운 일이지만, 솔직히 정사(精舍)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학문을 가르치려고 베푼 집,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 한다. 배우고 책 읽고 생각하는 집이로군. 그럼 서당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중환 선생이 조선팔도에서 살만한 곳으로 도산과 함께 최고라고 평가했을 때는 지리적인 측면이 강조됐을 터인데 필자는 이 마을이 책 읽는 동네라 가장 마음에 든다. 한 마을에 정사(精舍)가 4개씩이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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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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