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20 수 13:08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문화기행] 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⑨눈비 글 읽듯 내리고 바람 시 읊듯 지나가고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8.16 10:11
  • 호수 735
  • 댓글 0

[병산서원(屛山書院) -1]

 도동서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이름이 아름다운 현풍으로 돌아와 시외버스로 바꿔 타고 대구 서부터미널에 도착했다.

“안동행 버스 몇 시에 있습니까?”
“3시간 후에나 있습니다.”
“너무 많이 기다리게 되는군요.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북부터미널로 가 보시이소.”

 매표소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달성군청 앞 정류장에 가야 된다기에 걸어갔다. 날씨가 더워 그리 만만치 않았다.

 달성군청 앞 건너편 인도에는 야채를 파는 노점상들로 질펀하게 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은 길을 양쪽으로 점거하고 각종 야채와 나물 등을 펼쳐 놓으니 걷기가 매우 불편했다. 촘촘한 노점들 때문에 충분히 타고도 남았을 버스를 놓치고 뙤약볕 아래 한참을 벌서듯 서 있어야 했다.

 

   
하회마을 골목길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노점
 고추 상추 오이 배추 무와
 두어 가지 나물들이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채 서로 어깨를 비비며
 길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노예들처럼
 데려갈 손길을 기다린다
 중년 고개 위에 올라선 듯
 무표정한 아낙네가 주인
 상추보다 한 발 앞서 산나물이 시든다
 페트병의 물로 잠들어가는 나물을
 흔들어 적셔 깨우지만
 이미 깊이 이울어 깨어나긴 글렀다
 상품성은 잠 속으로 사라져
 나물을 위해 쏟아 부었을 아낙의
 거친 노력이 허망하게 말라간다

 무엇이 이들을 비합법의 옹색한
 거리로 내몰았는가
 치솟는 기온이 짜증과 연민을 섞어
 길목 북새통을 아프게 달군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검고 투박한 아낙의 손등으로
 입하(立夏)를 건너온 양광(陽光)이
 바늘처럼 쏟아진다
 팔자 늘어진 ㅅ들처럼
 명품에 호의호식
 국내관광 해외여행
 얼굴깎기 피부관리는 못해도
 들고 나온 푸성귀나 모두 팔고
 돌아갈 수 있으면 행복할 텐데
 그래봐야 있는 ㅅ들에게는 푼돈의
 수준에도 못 미칠 테지만

 대구의 시외버스 북부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좀 우스운 표현이지만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게 어떻게 우연히 될 일인가. 약속된 지점에서 정해진 시간에 버스를 타면 그만인 것인데. 당연히 그렇다. 그럼에도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었다.

 승차권을 사가지고 승강장 구역 안으로 들어가니 행선지를 적어 놓은 팻말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8번 승강장에 ‘안동’이라 쓰여 있어서 그 아래에 서서 기다렸다. 시간을 보니 출발 10분 전. 5분이 지나자 버스가 들어와 서는데 자세히 보니 안동행이 아니었다. 어? 이상하다, 안동행은 좀 늦는 모양이네!

 무료하고 좀 이상하기도 해서 행선지 표지판을 다시 보니 안동 이외에도 군위 안계 영풍도 간다고 되어 있다. 안동 가는 길에 지나는 마을들인가보다 생각하는데 동행하던 강승용 씨가 무료함을 달래려고 마을 이름을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자 누군가가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안동 갑니다”
“그럼 저쪽 4번 승강장에 가서 타셔야 됩니다. 아, 벌써 버스가 와 있네요.”
“뭐요? 여기서 타라고 씌어 있는데 4번이라니.”
“빨리 가세요. 곧 떠날 것 같습니다.”

 그 분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잽싸게 이동, 승차하니 버스는 바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황당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3대 도시 대구의 시외버스터미널 체계가 이렇단 말이지!
 
 

   
하회마을 전통가옥
이제 안동(安東). 드디어 안동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자기 뜻대로 골라서 태어날 수는 없다. 자신의 철학이나 생리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상관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마치 옛날 신랑 신부가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는 경우만큼이나 억울한 노릇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또 하나의 고향을 선택하여 가질 수 있게 하는 ‘복수 고향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좋은 점이 많을 것 같다. 필자더러 후천적 고향을 하나 골라가지라 한다면 서슴치 않고 안동을 택할 작정이다. 선천적 고향이 나빠서는 아니다. 이 나라의 곡창(穀倉) 호남평야에 자리잡고 있어서 좋은 곳이다.

 유홍준은 “안동에서는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적인 엄숙성, 전통의 저력, 공동체적 삶의 힘 같은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고 했다. 나는 안동이 술 익는 마을이 아니라 글 읽는 마을이기 때문에 좋다.

 어제의 햇볕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

 옛 진실에 너무 집착하느라
 새 진실에는 낭패하기 일쑤긴 하지만
 불편한 옛것들도 편하게 섬겨가며
 차말로 저마다 제 몫을 하는 곳

 눈비도 글 읽듯이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 수(首) 읊어 지나가시고
 동네 개들 덩달아 댓귀(對句) 받듯 짖는 소리
 아직도 안동이라
 마지막 자존심 왜 아니겠는가
 (유안진  柳岸津의 안동 / 일부생략)

 안동 서쪽에 하회(河回)마을. 강물에 빙 둘러싸여 주머니처럼 매달려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의 연고지이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 유명한 곳. 그만큼 유서 깊고 아름다워 소중한 마을이다.

 하회마을 동편 강기슭에 병산서원이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침 일찍 하회마을 여기저기를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서울 강동구태권도협회 회장이기도 한 김광현 관장이 지방 출장길에 합류하여, 여행이 좀 더 즐거워졌다.
===================================================================================

   
최창신 고문
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