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판정시비로 인해 심판과 지도자간에 불신이 팽배한 시점에서 중재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정시스템이 '소청제'다. 하지만 제도자체가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마저도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주니어선수권에서 르네 분델리 WTF 경기위원장(맨 우측)이 소청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F)과 대한태권도협회(KTA)는 소청제에 대해서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 소청신청서와 소청료를 경기 종료 후 10분 이내에 제출하면, 5명 이상 홀수로 구성되는 소청위원회 위원들의 과반수 의견에 따라 최종 판정이 결정되고, 소청위원회의 의결은 최종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WTF와 KTA의 소청제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소청료, 심의절차 등)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개요는 유사하다.

심판들은 항상 로비설에 시달리고 있고, 특히 국내 대회에서는 신체에 대한 위협까지도 느낄 정도다. 또 일부 지도자들과 시도협회 관계자들은 심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제재는 지극히 미흡한 실정이다.

반면 지도자들로서는 심판들의 판정에 억울함을 표시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로비설이 지도자들에게 심판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한 순간의 판정 실수는 선수와 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심판들을 의심에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판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인 소청제가 올바르게 정착돼야만 경기장 질서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여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소청제는 심판과 지도자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국제대회의 경우 소청료가 형평성이 부족하고 다소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행 WTF의 겨루기대회 소청료는 100달러(품새는 200달러)이고, KTA의 국내 겨루기대회에서는 7만원이다.

특히 WTF의 경우 겨루기와 품새대회의 소청료를 달리 책정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WTF는 올림픽 태권도종목 소청료가 300달러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점이 없고, 소청료가 너무 낮을 경우에는 지도자들이 무분별하게 소청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지만 형평성 문제에 대한 해명은 되지 않는다.

각국 정부까지 나서 메달 획득에 열을 올리는 IOC의 올림픽과 태권도의 활성화와 저변확대를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WTF의 세계선수권대회는 개최 의의 자체가 다르다.

또 겨루기와 품새로 대별되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세계품새선수권대회의 소청료를 달리 책정한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WTF는 우선 소청료를 겨루기든 품새든 균일하게 책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적정수준으로 하향조정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소청을 제기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소청료를 올린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나 소청을 자제할 수 있는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소청제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청 심사에 필요한 철저한 감독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각 코트마다 설치돼 있는 1대의 동영상 카메라로 부심들도 확인하지 못하는 판정의 사각지대를 빈틈없이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동영상 카메라의 수를 늘리고, 소청위원들을 각 코트마다 배치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소청제의 가장 중요한 점은 판정의 번복 여부다. 소청이 이뤄졌을 때 신속하게 해당경기를 분석하는 한편 명백한 오심이 발견됐을 경우에는 판정 번복이 가능해야 한다. 판정이 번복되면 소청이 난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판정 번복을 기피하는 행태는 오히려 소청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WTF는 지난 7월 베트남에서 열린 제6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심판의 오심을 인정하고 심판을 징계하는 한편 해당 경기의 판정을 번복했다. 소청제가 실효성을 거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소청에 의해 경기가 번복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청 절차를 밟아도 번복되지도 않고 소청 절차를 밟지도 않고 경기장이나 대회 진행석에서 거친 폭언이 오가는 풍토가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심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 승부가 결정되는 품새대회의 경우 판정 시비는 겨루기대회보다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각종 대회를 추진하는 WTF, KTA는 물론 지도자들도 소청제에 담긴 취지를 살리려는 노력을 경주할 때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태권도 경기장의 문화를 정착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홍철 기자  wtkd@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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