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서울시 월계동의 이박사한양태권도장에 희끗한 머리에 인자한 얼굴을 한 노신사가 들어서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노란띠 수련생이 “관장님~”하고 외치며 달려와 와락 안긴다. 노신사도 반가운 듯 활짝 웃으며 꼬마 수련생을 두 팔로 감싼다. 1976년부터 서울에서만 40년 넘게 태권도장을 운영해오고 있는 이재철 관장이다.

서울 보문동에서 10년 넘게 도장을 운영했고, 1987년부터 줄곧 이곳 노원구 월계동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지금은 사범들 덕분에 일선에서 수련생을 직접 지도하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관장으로서 아이들의 심신을 보듬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도장은 시간과 공간을 참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따로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마련한 이층 참관실이 눈에 띈다. 도장 한쪽 벽면을 따라 난간처럼 얹힌 참관실에서는 유리를 통해 수련장 모든 곳이 한눈에 들어온다. 후미진 구석이나 공간으로 사용하기 힘든 곳에는 어김없이 벽과 문을 설치해 다용도실이나 수납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부모는 아이들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고, 수련생은 깔끔한 수련장에서 운동하게 돼 만족이다.

태권도 수업이 없는 오전에는 이곳에서 요가 수업이 이뤄진다. 요가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요가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참 알뜰한 살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관장은 외국어를 중시하는 최근 교육 방향에 맞춰 학부모들의 의사를 수렴해 2주 전 외국인 사범도 고용했다. 오랜 지인의 추천으로 소개받은 앤드류 낼슨(22) 사범은 태권도 공인 4단으로 한국어를 못하는 미국인이다.

앤드류 사범이 아이들을 지도했던 지난 2주간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다. 영어교육을 중시하는 학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 수련생들도 태권도 수련 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한국말을 못하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가르쳐주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이철재 관장이 앤드류 사범을 지도하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수련생이 사범에게 “water!” 라고 이야기하며 정수기를 가리켰다. 앤드류 사범이 알아차린 듯 물을 먹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영어 내용보다 수줍음 없이 부족한 영어로라도 주저함이 없이 자기표현을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 관장이 외국인 사범을 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도장에서 무슨 영어람?’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 당연히 도장에서 최우선으로 지도하는 것은 태권도다. 노원구에서도 이 도장 수련생들의 실력이 좋다고 잘 알려져 있다. “태권도 자체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품새와 겨루기를 통해 체력은 물론 집중력, 암기력, 창의력 등을 크게 발전시킵니다.” 관장의 생각이 이렇다 보니 수련생들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도장도 하나둘씩 늘려 지금은 이곳까지 총 세 개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나 서울시협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지만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태권도장임을 느낀다는 이 관장. 낡은 앨범을 꺼내 들더니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옛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이 녀석은 국가대표 출신으로 지금은 고위 경찰관이고, 이 녀석은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메달을 따냈었다”는 둥 제자들 자랑이다.

“40년 넘게 도장 하면서 내 가장 큰 재산이자 기쁨은 바로 제자들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큰 행복을 느낍니다.”

이 관장은 지금도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신병주 기자>

신병주 기자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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