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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의 뿌리 5대 서원을 찾아서-③선조가 한석봉 글씨로 현판(懸板) 하사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6.17 10:37
  • 호수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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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玉山書院) (3)]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고 베지 마오.
소백(召伯) 우리 님이 거기 풀밭에 누워 쉬셨다네.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고 꺾지 마오.
소백 우리 님이 거기서 휴식을 즐기셨네.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고 뽑지 마오.
소백 우리 님이 그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셨네.

시경(詩經) 소남(召南)편의 ‘팥배나무’. 상당히 어려운 한문시라서 이원섭 님의 번역을 바탕으로 필자가 감히 의역을 해보았다. 소공(召公)을 사모하는 백성들이 그가 가끔 쉬었던 그늘의 팥배나무까지도 아꼈다는 노래.

팥배나무는 10m 이상 자라는 큰키나무로, 가지 끝에 배꽃을 닮은 흰 꽃이 10개 정도씩 무리지어 (산방 꽃차례) 핀다. 그 열매는 팥을 닮기 때문에 ‘팥배나무’라 한다. 흰색 꽃들이 지붕처럼 덮고 있는 숲, 서원에 배향된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끔찍이 존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팥배나무 시(詩)와 잘 어우러진다.

   
옥산서원에는 선조가 한석봉에게 글씨를 쓰게 해서 내린 현판이 걸려 있다.
옥산서원은 해발 572m 적당한 높이의 온화한 어래산을 등지고, 보기 드문 절경의 계곡을 코앞에 바라보며 우아하게 앉아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 잡기. 그 바람에 서향(西向)이 돼버린 게 조금 옥의 티로 보이긴 하나 그게 무슨 결정적인 흠이 되는 건 아니다.

서원의 정면, 그러니까 계곡 너머 서쪽으로는 자옥산(紫玉山)과 도덕산이 구성지게 바라보인다. 좀 멀리 오른쪽으로는 삼성산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편안한 삼각형 모양들. 풍수(風水)를 보는 이들은 이런 산들을 ‘문필봉(文筆峰)’이라 하며 서원 자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큰 학자들이 나올 수 있는 지형이라고 한다.

터무니없는 미신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안정된 곳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좋은 심성을 기르며, 학업에 진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커질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랬을까. 자옥산의 뒷 자를 따서 ‘옥산서원’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때는 1572년(선조 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정확하게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경주 부윤 이제민(李齊閔)은 안강(安康) 고을의 선비들과 뜻을 모아 회재(晦齋) 이언적 선생의 고결한 정신을 기리며, 후진을 바르게 양성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설립했다.

이어서 이듬해에는 조정에 사액(賜額임금이 사원(祠院) 등에 이름을 지어줌)을 요청하여 선조 임금으로부터 ‘옥산서원’이라는 현판(懸板)을 하사받았다. 대개 현판은 임금이 친필로 직접 써주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명필이 대신 써주기도 한다. 옥산서원의 현판은 선조의 어전에서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고 한다.

   
서원에 달린 누각 무변루.
서원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 교육과 제사(祭祀)이다. 따라서 모든 건물의 배치는 이 두 가지 목적을 잘 담아내기 위하여 펼쳐진다. 대체로 교육을 위한 건물들은 앞쪽에, 제사용 사당(祠堂)등은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을 영어로는 뭐라고 부를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고 서양에 없는 제도나 사물의 명칭은 발음 그대로 로마나이즈(romanize)하면 그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면 서양인들은 전혀 못 알아듣는다.

경주시가 만든 설명서의 영역(英譯) 부분을 들여다보니 ‘Confucian Shrine - Academy'.
아하! 이게 공식명칭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되 서원의 기능은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다시 우리말로 고치면 ‘유교 사당 학원’. 재미있다.

그럼 ‘옥산 유교 사당 학원’을 들어가 보자. 정문은 닫혀있다. 남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가려다 현판을 보니 ‘역락문(亦樂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亦樂’은 또한, 역시 즐겁다는 뜻. 오라! 논어의 그 유명한 학이(學而)편에서 따왔군. ‘벗이 있어 멀리서 스스로 찾아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벗이 멀리 서울에서 작심하고 찾아 왔거늘 즐겁다면서 대문은 왜 닫아걸었단 말인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같지 않음일세, 그려.

웃음을 참는 마음의 한 귀퉁이에 서운함이 샘물처럼 고였다. 공자(孔子)께서는 이미 2천5백년 전에 이런 일이 생길 걸 아셨는지 위로의 말씀을 덧붙여 놓으셨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나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人不知而不하니 不亦君子乎아)” 공자는 과연 천재시다.

   
무변루에 오르내리는 계단. 정신을 놓으면 낙상하기 십상이다.
정문 바로 안쪽에는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우람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무변(無邊)’이라, 옳거니, 배움의 세계에는 ‘끝이 없으니’ 항상 겸손하고 근면한 자세로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로군!

누각을 오르는 계단이 강렬하게 눈길을 끈다. 길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인데 발 딛는 돋을새김을 일부러 깎아 각(角)을 없애 버려 자칫하면 미끄러 떨어지게 해놓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어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진 셈이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며 옥산서원 현판이 내걸리고, ‘구인당(求仁堂)’이라는 당호가 안에 달린 강당이 중심을 잡고 있다. 어짐[仁]을 추구하는 것이 이 서원의 교훈인가 보다.

마당 양 옆에는 원생(院生)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와 암수재(闇修齋)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배움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과 우매함을 고쳐나갈 것을 충고하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이 뒤에는 제사와 관련된 집들이 균형있게 배치돼 있다. 체인묘(體仁廟)라는 이름의 사당이 중앙에 있고 주변에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祠廳) 등 관련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옥산서원의 자랑. 서원 경내와 좀 떨어져 있는 회재 선생의 사저 독락당에 나누어 보관되어 있다는데 그 중에는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이라는 책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활자본으로 보물 제 524호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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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신 고문
최창신 본사 상임고문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 · 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으며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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