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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교재단 시범단의 아랍 4개국 순방기(6)충신 우리아의 비극
  • 최창신고문
  • 승인 2011.02.11 10:46
  • 호수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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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암몬성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요르단 암만에서 실로 감동적인 시범을 펼쳐 극찬을 받던 날, 낮시간까지는 일정이 비어 있었기에 기분전환도 시킬 겸 가까운 암만성(城)에 가서 가벼운 관광을 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근처에 있는 옛성은 모두 ‘암몬’이라는 이름으로 구약성경에 수없이 등장한다. 원래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그 후손들이 퍼져 살았던 지명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되었다.

암몬은 사촌형뻘인 ‘모압’과 함께 떨떠름하기 그지없는 출생배경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들의 아버지. 그가 살던 소돔이 멸망할 때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두 딸과 함께 피신했던 롯이 무의식 상태에서 두 딸과 관계를 맺어 낳은 자녀가 바로 모압과 암몬. 그렇다면 롯에게 이 두 사람의 존재는 무엇인가? 자신이 낳았으니 아들인가, 딸들의 몸을 빌려 낳았으니 손자인가!

필자는 ‘다메섹의 회심’이라는 상당한 분량의 중편시(미발표)에서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어 그 일부만 소개하고자 한다.

<전략(前略)>
“소돔은 끝내 고모라와 함께 패악(悖惡)의 늪에 빠져
폭우처럼 쏟아지는 유황불에 멸망하니 미련 많은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돌아가
한 눈으로는 성내(城內)에 두고 온 재산과 공포를
한 눈으로는 아도나이의 말씀과 영원한 나라를
마다가스칼의 카멜레온처럼
당황한 사팔눈으로 뚫어지게 응시하며
허수히 영겁의 길목을 지키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되었지.

공포와 상실감으로 공황(恐惶)의 늪에 빠진 롯
사람들 모여 사는 곳에 섞여 있는 것 자체가 두려워
산 위의 동굴 속에 몸을 숨기는데
연 이틀 억병으로 취해 두 딸과 차례로 열락(悅樂)에 빠지니
그것은 차라리 또 다른 재앙
아들도 아니고 손자도 아닌 것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게 하는 치욕
청동기 시대의 비극을
예단(豫斷)하지는 못했으리라.     
<후략(後略)>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사사시대(士師時代)를 거쳐 왕정시대에 접어들어 제2대 임금인 다윗시대에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군(全軍)을 동원, 암몬을 공격하게 한 다윗은 한가하게 성벽 위를 거닐다가 어느 여염집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구약 사무엘하 11장은 그 여인이 ‘심히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바로 만고의 충신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당시 우리아는 군인이었고 암몬성 공격에 참가하고 있었다. 다윗왕은 유부녀 밧세바의 미색에 반하여 그녀를 범하게 된다. 이어서 밧세바의 임신.

자신이 임신시킨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윗은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를 주어 집에 가도록 했으나 ‘모든 동료 군인들이 야영하면서 전쟁 중인데 어찌 자신만 집에 가서 아내와 동침하겠는가’라며 그는 끝내 집에 들르지도 않았다.

다윗은 사령관에게 밀서를 주어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접전지에 배치하고 일부러 위험에 처하도록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충신이 결국 전사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그의 미인 아내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의 일. 그럼에도 암만시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그 격전지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을 마주 보고 오른쪽에는 깊은 계곡.
그 너머에는 7개의 봉우리가 천혜의 방벽을 형성하고 있다. 반대편인 왼쪽 언덕 역시 입지조건이 좋아 지금도 왕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암만성을 공격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은 ‘자발 후세인’ 마을을 가로질러 성벽의 정면으로 연결되는 큰길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것이다. 3천년  전의 우리아를 포함한 이스라엘군도 바로 그 길을 통해 공격했을 게 틀림없다. 자신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위대한 충신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다윗의 흉계를 아는가 모르는가. 맨 앞에서 용감하고 우직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우리아의 모습이 성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다음날은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공식 일정이 없는 마음 편한 하루. 그래서 우리는 아주 ‘특별한 하루’로 만들었다. 성경(구약)에 등장하는 이름난 장소들을 여기저기 여유있게 둘러보는 임시 성지순례를 하기로 한 것.

이스라엘의 동쪽 지방을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이른바 ‘왕의 도로(king’s road)'를 따라 남쪽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사사(士師)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입다’의 비극이 잠겨 있는 아벨그라임,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에게 멸망당한 아모리왕 시혼의 땅 헤스본.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느보산과 그가 묻혔다는 벧브올 골짜기.

이상하게도 느보산 가는 길에는 이곳에서 보기 드문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도열, 방문자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당부하는 듯 보였다.

느보산에서 바라볼 수 있는 요단강 건너의 이스라엘 지역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시야가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산을 내려가면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사해에 이르게 된다. 해수면보다 무려 4백 미터나 아래에 위치해 있다.

사해 조금 못미쳐 싯딤 골짜기라는 곳이 있다. 유난히 나무들이 무성하여 중동지방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 지난 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기업인 한보그룹이 조성한 수로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 한다. 어깨가 으쓱. 그러나 정작 한보그룹은 수로공사에서 번 돈을 ‘바위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개발사업에 투자했다가 다 날리고 빈손으로 이곳을 떠났다는 말이 들린다.

마지막 코스였던 사해 관광. 너무도 유명하여 설명이 필요없는 그곳에서의 수영은 잊을 수가 없다.

최창신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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