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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교재단 시범단 아랍 4개국 순방기(5)‘세계 제1의 팀’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1.31 10:16
  • 호수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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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는 ‘새벽의 도시’인가 ‘밤의 도시’인가.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두 가지의 이미지가 다 살아 있다. 베이루트에 들어갈 때는 깊은 밤(2시)에 일어나 짐을 싸야 했고, 떠날 때는 새벽 5시에 기상, 행장(行裝)을 꾸렸다.

새벽은 거의 모든 경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을 그 품에 안고 있다. “봄의 새벽은 포근해서 좋고, 여름의 새벽은 신선해서 좋고, 가을의 새벽은 싸늘해서 좋고, 눈떠보면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의 새벽은 창자 속까지 스며드는 신선한 기운에 정신이 바짝 들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박화성/새벽)”

그러나 적어도 아랍국가들을 순방하던 우리 시범단에게 새벽은 고달프기 그지없는 신산(辛酸)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이미 두 차례의 시범공연을 마쳤기 때문에 격파용 송판더미가 많이 소진되어 이동이 가벼워진 편안함이라고 할까.

   
요르단 암만 시범에 앞선 훈련

요르단의 암만 국제공항에는 요르단 태권도협회 직원과 우리 대사관의 김윤정(金倫廷?여) 참사관이 마중나와 있었다. 이분들은 중형 버스에 선수단, 트럭에 우리들의 짐, 별도의 승용차에 필자를 태우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일 처리에 솜씨가 있고 조직적이었다. 암만 시내의 ‘알 투라야’ 호텔에 투숙.

이번 여행 중 암만이 가장 쾌적했다. 교통사정, 호텔시설, 특히 모든 관계자들의 환대가 만족스러웠다. 1층에 있는 호텔식당에서의 점심식사도 야채가 많이 제공돼 좋았다. 식사 후에는 우리가 공연할 체육관에 가서 매트, 락커룸, 음향 장치. 보조기구 등 관련 시설물을 점검하고 연습했다.

저녁시간은 즐거웠다. 신현석 대사가 선수단 전원을 공식 초청, 훌륭한 만찬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좋은 음식과 따뜻한 환대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필자는 즉흥적으로 답례의 말씀을 했다.

“우리는 특수목적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게릴라들처럼 이곳에 달려왔습니다. 닷새 전 우리는 ‘대전발 0시50분’을 떠올리며 정확하게 0시50분에 텅 빈 영종도 국제공항을 떠났습니다.

그 후 힘든 여정(旅程)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밤중인 2시에 일어나 짐을 싸가지고 고요와
어둠에 잠긴 도로를 달려 비행기를 탔고, 지중해를 가로질러갔다가 되돌아왔으며 이곳에 올 때는 새벽 5시에 이동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두 차례의 시범공연을 치렀습니다.

사실 피곤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태권도의 명예와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이곳 암만(Amman)에서는 암만(아무리) 피곤해도 있는 힘을 다해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온순해 보이는 이 젊은이들이 무대에 섰을 때, 가슴에서 일어나는 불길과 에너지가 무섭게 살아나는 두 눈과 손발을 통해 뿜어져 나오며 작렬(炸裂)하는 것을 보시고 감동이 되시거든 앞으로 많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충 이런 요지의 인사였다.

다음날 스포츠 시티의 체육관 프린스 라쉬드 홀에서 펼쳐진 시범공연은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 일반 관중들의 호응도 뜨거웠지만 국왕의 숙부인 엘 하싼 무도연맹 회장과 그의 아들이자 요르단 태권도협회 회장인 라쉬드 왕자, 그리고 2명의 공주 등 최고의 로얄 패밀리들이 자리를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엘 하싼 회장은 단순한 왕숙(王叔)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40여년 동안 차기 국왕으로 지명돼 이른바 왕세제로 살아온 귀하신 몸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치적 사정이 불리하게 작용, 막판에 후계자의 자리에서 밀려난 불운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 방송 등 매스컴이 총동원되었고 경호요원들이 본부석을 중심으로 사방에 깔렸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의 시범. 다음날 현지 신문은 '크고 위대한 묘기'였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시범이 펼쳐졌다. 체육관 자체의 조명에 방송사들의 특수조명, 카메라 플래시, 관중들의 함성이 어우러져 공연무대는 열기에 휩싸였다. 선수들의 눈빛도 여느 때와 달랐고 그들이 토해내는 기합소리 또한 매서웠다.

보라, 저 젊음의 가슴 속에 약동하는 불꽃을. 배달의 혼, 태권의 정체(精體) 속에서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스스로도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저 힘을 품새의 틀 속에 승화시켜, 열두 젊은이가 움직여도 완벽하게 하나의 꽃을 피우고, 허공을 가르는 손과 발의 날카로운 파열음 속에서 이글거리며 터지는 속도와 파괴력의 자장(磁場).

그 보이지 않는 내공과 보이는 외공의 결합이 매트 위에서 뜨겁게 춤춘다.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포맷(format). 관중들은 숨을 멈추고 넋을 잃는다.

공연은 1부를 지나 어느덧 2부. 종반을 향해 치닫는 길목에서 미모의 윤미정(尹美貞) 3단이 어지간한 수련생은 흉내내기도 어려운 개인기를 선보이고, 체격이 좋은 남자 단원 2명을 멋지게 제압해 버리자 같은 여성이라 그런지 본부석의 공주들이 파격적으로 좋아했다.

겨루기를 묘기화하여 보여주는 장명부터 하싼 왕숙이 아예 앞의 테이블 쪽으로 당겨 앉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상명 트레이너, 이용주 주장, 김태호 코치 3인방의 수준높은 시범이 종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김 트레이너는 몸을 날려 허공으로 치솟으며 장애물 밟고 뛰어올라 발로 격파. 주장 이용주는 줄지어 서있는 여섯 사람의 어깨를 밟고 전진하다 몸을 뒤틀며 격파. 김 코치의 전광석화 같은 이동 연속 격파. 장내는 감동의 물결.

피날레는 남승현 감독의 몫이었다. 49세의 남 감독이 도복으로 갈아입고 등장했다. 품새에 이어, 두꺼운 송판 3장 또는 4장을 주먹과 발로 부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마지막 순서는 공중격파. 대형 책상 두 개를 쌓아 놓은 장애물, 달려 나가면서 이를 밟고 4m 이상을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회전하다가 격파하는 묘기. 첫 시도에서 제대로 찼으나 위치 선정이 나빠 빗나갔다.

이때 흥분한 하싼 왕숙이 체면도 잊은 채 벌떡 일어섰다. 덩달아 남 감독도 더욱 긴장, 한두 차례 실수하고는 끝내 성공. 장내는 떠나갈 듯 요란했다. 대 성공! 다음날 현지 신문은 ‘크고 위대한 묘기’였다며 ‘세계 제1의 팀’이라고 극찬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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