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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교재단 시범단 아랍 4개국 순방기(4)역사의 숨결, 레바논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1.19 10:37
  • 호수 711
  • 댓글 0

따르릉, 따르릉. 깊은 밤 정적(靜寂)을 깨며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새벽 2시.

깊은 여독(旅毒)과 시범공연의 피로 때문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단원 모두를 깨우는 인정머리 없는 모닝콜. 그러나 어쩌랴, 로마를 거쳐 베이루트로 가려면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 하는 것을. 이미 전날 저녁 전원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해 두었으니 다 알고 있는 일. 그래도 이건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겹겹이 얼어붙은 이 절망의 겨울 속에서/ 오히려 별들처럼 잠자는 목숨들. 아직은 당신의 입김이 채 식지 않은 체온에 안겨/ 우리는 얼마나 햇빛을 바라며/ 오늘을 살아가는가”(최재형의 ‘동면’에서)

새벽 3시, 호텔 로비 집결. 체크아웃을 마치고 공항행. 인적이 끊겨 텅 빈 도로는 깊은 잠에 젖어 있다. 가로등도 피곤한가, 누르스름하게 졸고 있었다.

공항에는 이미 한승호 참사관과 행정관이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엇하러 나오셨습니까?”
“마땅히 나와서 작별인사도 드리고 출국수속도 도와드려야지요.”
“안 나오셔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데. 아무튼 폐를 많이 끼칩니다.”
“폐라니요? 어제 시범이 너무 훌륭해서 우리 자랑스런 선수들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두로의 로마 유적지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널브러진 모습으로 기우는 햇발을 받아내고 있다.

 

이렇게 알제를 떠나 이탈리아 로마로 날아갔다. 하늘도 어둠속에 묻혀 있었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빵 하나씩에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지중해를 가로질러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들어갔다.

레바논.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금은 국제적으로 그리 강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국력 탓이겠고,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상이 미미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에는 작지만 대단한 나라였다. ‘페니키아’라고 하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베니게’라는 이름으로 성경에도 많이 등장한다.

‘붉은 색’ ‘자주색’의 뜻을 가진 헬라어 포이니케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 특산물인 달팽이조개에서 추출한 붉은 색 염료로 옷감을 만들어 그리스 사람들에게 수출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부여된 듯하다.

토질이 농사에 적합하여 보리 귀리 양파 마늘 등이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으며 무화과 대추야자 올리브 포도의 수확도 풍부했다.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매우 유명했다.

“이에 솔로몬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의 바라시는 대로 할찌라. 내(레바논의 주요 도시 두로의 왕)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수운(水運)하겠고 내가 그것을 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받으시고 나의 궁정을 위하여 식물을 주소서”(구약 열왕기상 5장 8?9절)

지금은 파괴되어 볼 수 없지만 솔로몬 임금이 지은 이스라엘의 성전과 궁전은 그 정교한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성전은 기원전 9백60년부터 4백년 가까이 그 위용을 자랑했으나 바벨론에게 파괴되었다. 그 빼어난 성전과 궁전을 지을 때 바로 레바논의 백향목이 쓰였던 것이다.

또 페니키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르타고. 군사들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의 의표(意表)를 찌르며 기습 공격에 성공, 세계 전쟁사에 이름을 날린 명장 한니발이 바로 카르타고의 장군이다.

이 카르타고는 페니키아가 북아프리카(지금의 튀니지아)에 건설한 식민지. 해상 무역의 발달로 큰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고 아울러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 해상 무역의 전진 기지들이 바로 시돈과 두로, 비블로스 같은 항구도시들이었다.

이 항구도시들을 창구(窓口)로 하여 고급 옷감 유리제품 도기 포도주 등 부가가치(附加價値)가 높은 상품들이 여러 나라 많은 지방으로 수출되었고, 상아와 파피루스 등은 중개무역의 대상이었다.

다양한 나라들과 교역을 하다 보니 글자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이를 위해 문자를 정리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이게 오늘날 영어 알파벳의 효시가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글자들은 BC 8~9세기 무렵 그리스인들에게 받아들여져 온 세상에 보급되었다.

역시 무역에 필요한 주판과 파피루스로 만든 책들도 유명했다.

특히 이 페니키아지방은 2천 년 전 예수님이 직접 방문, 복음을 전하셨으며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우리 선수들의 공식 일정과 중복되지 않는다면 몇 군데라도 갈 수 없을까 궁리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러한 수천 년 역사의 보석함 같은 장소들을 그냥 스쳐 지나간대서야 말도 되지 않는 일.

대사관 측에 방법이 없겠느냐고 상의했더니 기꺼이 차를 제공해 주었다. 레바논대학 박사과정 입학을 준비 중인 유학생 이경수(李坰樹) 씨를 가이드로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시돈과 두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사진을 통해 수도 없이 보았던 고도(古都) 시돈.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것처럼 옛날의 번성(繁盛)과 풍요는 모두 사라지고 영락(零落)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귀하고 값비싼 각종 물화(物貨)가 쌓여있고 여러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넘쳐났을 그 바닷가는 쓸쓸했다.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의 시돈.

   
한때 해상무역으로 영화를 누렸던 고도(古都) 시돈. 한낮 항구에 정박한 채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들의 손길이 한가하다.
아직 해는 중천에 있는데도 작은 배들은 거의 정박해 있고 어부들은 느린 손길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해변과 물 속은 각종 쓰레기들로 지저분했다. 낡은 성벽과 더러운 집들.

‘두로’는 로마의 유적지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널브러진 모습으로 기우는 햇발을 받아내고 있었다. 큰 규모의 전차 경주장이 그나마 옛 숨결을 느끼게 했다.

이날의 시범공연은 베이루트의 미셸 엘 뮈르 체육관에서 펼쳐졌다.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태권도 보급률과 비례하는지 베이루트의 관중들은 체육관을 가득 메웠고 첫 프로그램부터 열광하기 시작했다. 박수와 환호성이 끊일 줄 몰랐고 중반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서서 관람하며 열기를 더해 주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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