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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외교재단 시범단의 아랍 4개국 순방기 (1)기나 긴 여정(旅程)
  • 최창신 고문
  • 승인 2011.01.12 10:01
  • 호수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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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極東)의 인천공항을 떠나 넓고 넓은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고, 이어서 ‘문명의 우물’ 지중해를 길게 횡단하여 북아프리카의 끝에 이르는 머나먼 길. QR 883편 카타르 항공기는 가쁜 숨결을 토하며 아시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유행가의 노랫말 ‘대전발 0시50분’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며,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 0시 50분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8시간의 비행 끝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었다. 꾸벅꾸벅 조는 사이 세상의 지붕을 타고 넘은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온다. 히말라야! 내년 가을에는 거길 가야 한다. 천년 전에 살다 간 티베트의 밀라레빠는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히말라야로 떠났다고 한다.

물론 뭔가를 깨닫게 되면 좋겠지만 그런 구도자적인 입장으로 가고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 산악인처럼 8천 미터 이상의 초고봉에 목숨 걸고 도전하려는 것도 아니다. 안나푸르나, 칼라파타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5천 미터 이상을 트레킹해 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매주 3차례씩 서울근교의 산들을 열심히 오르며 훈련을 쌓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비행기로 먼 길을 여행할 때마다 항로를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게 취미다. 지루함을 더는 데 도움이 되고 지리공부도 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영공을 가로질러 카타르의 도하로 들어가는 게 순리다. 그럼에도 우리가 타고 있는 QR 883편은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는 그 항로를 이탈하여 남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고 있었다. 인도 북쪽과 파키스탄 하늘을 날아 아예 아라비아해(海)의 북단 마크란 해변으로 몸을 낮추었다. 바닷길로 페르시아만에 들어가 도하에 내릴 모양이다.

왜 그럴까? 가장 친절해 보이는 승무원에게 물어 보면서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도 덧붙였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요.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 분쟁지역이라 영공이 봉쇄되어 불가피하게 피해 가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고, 두 번째는 비상시에 대비, 육지에서 가까운 바닷길이 안전할 수 있겠고 비행 중 고도(高度) 조정도 용이해서 그럴 수 있겠는데, 어떤 것입니까?”
“그런 질문을 하시는 승객은 처음입니다.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열심히 일하는 분에게 쓸데없이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저에게도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온 몸이 쑤실 만큼 앉아 있었는데(8시간 이상) 아직도 두 시간 이상 더 가야 겨우 도하. 거기서 두 시간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바꿔 타고 6시간을 더 가야한다. 지루하다. 천재 파스칼은 스므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심한 치통을 잊기 위해 당시 수학계의 난제였던 원추 표면에서의 무슨 방정식을 깨끗하게 풀어버렸다 하거니와 3백50년 뒤의 동양의 무식한 둔재는 심심풀이로 지리공부나 해야겠다.

   
평소 어리빙빙하게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사우디 아라비아 주변을 살펴본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겨울철에 즐겨 신는 투박한 털장화처럼 생긴 넓은 땅. 그 한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주인격의 사우디 아라비아. 그 주변을 여러 나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을 순서대로 외워보자. 쉽게 외우고 잊지 않으려면 스토리가 있어야한다.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나라 이름들을 연결해 가며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었?
 
“언제나 예예하며 잘 대해주었더니(예멘) 오만방자해져 가지고(오만) 제멋대로 토후국(土侯國)을 만들어 으스대며(아랍 에미레이트) 이것저것 간섭하며 까탈을 부리더니(카타르) 급기야는 바하의 집에 비를 내리게 하여(바레인), 일본의 유락쿠조처럼 사막에도 쿠라쿠조(쿠웨이트/이라크/조르단-요르단)를 만들어 즐겨보자고 난리를 치네.” 하하. 5분 만에 공부 끝. 이제는 절대 안 잊을 자신이 있다.

‘오만’이라는 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담이라는 지명이 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이고 ‘얼굴이 붉어지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옆에는 ‘수르’라는 곳도 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술(Sur)광야’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참으로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른 채 어영부영 세상을 살다가 떠나가는 것 같다. 아니,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상념에 젖어 있는데 조금 전 항로 때문에 질문했던 그 승무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첫 번째 것이 맞습니다.”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기장님께서 잠시 나오셨기에 얼른 여쭤보았지요. 어느 비행기든 아프가니스탄 상공은 비행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공부가 됐습니다.”

도하 국제공항에서 두 시간 대기했다가 QR 566편으로 바꿔 타고 6시간 동안 지중해를 가로질러 집 떠난 지 만 하루 만에 알제리아의 수도이자 시범단의 첫 기착지 알제에 도착했다. 기나긴 여행, 몸도 솜처럼 풀어져 있었거니와 거의 꼼짝 못한 채 좁은 의자에 쑤셔박혀 비벼댄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호텔에 들어 벗어 보니 양복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거의 넝마 수준이었다.

 

최창신 고문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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