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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사범 수기(10)- ‘돌멩이 되게 하소서’-9

소외된 곳을 찾아서

도장이 건축되면서 나의 교만은 시작되었다. 이제 내 건물이 있으니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전에 살던 집을 세 주고 다른 큰 집을 구입해서 이사를 하기로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은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도장도 어렵게 건축하였으면서도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나는 무리해서 집을 구입했다. 물론 그 은행의 수련생들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도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처음에 적응하는 기간이 좀 필요했다. 도장 건축 전에 다니던 수련생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장소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확장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도장은 물론 수련생들에게도 불성실하게 되어버렸다. 내가 도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데, 수련생들과 좀 더 가깝게 가족처럼 지내고 싶었던 것이 나의 생각이고 욕심이었는데 학생들과 나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었다.

집에서 경제적으로 조달을 못하다보니 나는 자신감마저 잃게 되어 버렸다. ‘돌멩이 되게 해 달라’는 나의 소원은 어디로 가고,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를 하였다. 이렇게 하지 말자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그래서 새 집을 팔고 예전 살던 작은 집으로 3년 만에 다시 이사를 갔다. 일단은 경제적 상태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 1년 반 만에 모든 것들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았다. 다시 안정을 찾고 나니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간다는 것에도 부담이 줄었다. 그래서 다시 이사를 했고, 도장은 꾸준히 성장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지관 4개를 문 닫았다. 지관 사범들 모두 하나같이 좋은 교육을 받았던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을 너무 믿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대학원에서까지 훌륭한 성적이었던 그들은 도장을 운영해 보람된 삶을 살고 싶었던 마음이 현실이라는 상황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많은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실질적인 도장운영 교육은 시키지 못했다. 현장에서 그들은 실패하여 버린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나의 품으로 돌아와 지금도 태권도는 계속하고 있다.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인 것이다. 다른 좋은 직장을 얻어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한 번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태권도라는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도장 사범의 길을 접어야 했던 사범들 중의 한 사람은 관원 수 3~4백 명을 거느린 성공적인 도장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목사가 되겠다고 도장 일을 접고 교회로 갔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내가 있는 곳에서 3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도장 문을 닫으면서 각 도장이 나의 명의로 되어 있어서 나에게는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각 도장의 사범들을 탓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도장에 실패했다고 우리의 사제 간의 관계마저 저버리지는 말자”고 당부했다. 그들이 나에게 경제적 부담을 남겨주고 떠났지만 관계만은 잃지 않았다. 이것 또한 교육의 연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유한 나라이기에 불쌍한 사람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에도 불쌍한 어린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가난한 나라의 상황처럼 굶주린 어린이는 없다고 해야 하겠지만 이곳 또한 전혀 다른 이유에서 외로운 아이들이 있다. 매년 우리 도장에서 도와주는 학생들이 있다. 이 지역의 시골로 더 들어가면 학교는 아름답게 지어져 있는데 어린 학생들이 부모의 손길이 별로 없어 혼자 지내는 학생들이 있다. 흑인 학생들, 그리고 멕시코 계통의 어린이들이 바쁜 부모 때문에 내동댕이쳐져 생활하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모아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도복도 제공하고 사범들이 가서 운동도 가르쳐 주고 심사도 봐주며 그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게 한 학기 태권도를 가르치면 다음 학기에는 거의 그 학생들은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성적이 저조해야 그 수업에 올 수 있는데 태권도를 하면서 성적이 올라서 그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다시 태권도를 하기 위해 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 그들의 생활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런 아이들은 순진하기 그지없다. 아주 단순하다. 어느 심사가 끝이 난 후 그들은 내게 달려와 인사를 하고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주위를 뱅뱅 돌기만 했다. 쑥스러워서다. 내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해주면 너무나 좋아한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리고 시골스럽지만 정이 있어서 나는 그들이 좋다.

몇 년 동안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태권도 시범과 교육을 했다. 사람들은 왜 양로원을 방문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들은 별로 찾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을 방문하다보면 인생을 배운다. 또한 이들을 방문하다보면 그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이들과 대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실제로는 나는 언제나 그들로부터 충분한 대가를 받는다. 사랑이라는 대가를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는 양로원이 약 20여 개가 있다. 그 양로원 모두를 방문해 보았다. 그들의 시설과 환경은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다. 어떤 곳은 시설이 훌륭한 호텔 수준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품위도 또한 다르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양로원 중에서 가장 기쁨을 얻었던 곳은 노인 두 분이 전부인 곳이었다. 장소가 너무 협소해 내가 어떤 동작을 보여주기도 거북한 그러한 작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밖으로 모시고 나와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강의를 했다. 그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처음에는 내가 왜 그들을 찾아왔느냐는 식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 심지어는 가족들도 별로 찾아오지 않는 곳에 낯선 동양인의 방문은 그저 생소했기에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 행사가 끝이 난 후 그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다. 반응이라 해봐야 고작 두 사람이지만, 나는 그들이 웃으며 행복해 하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이병석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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