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바로프스크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노보시비르스크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시차는 한국보다는 +2시간, 하바로프스크 보다는 +4시간이었다. 비행시간 또한 6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시베리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형 오페라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 전역의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는데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레닌 동상이 남아 있는 곳이 이곳이라 한다. 사회주의의 세력이 남아 있는 보수적인 도시인 셈이다. 우리가 시범할 장소는 바로 이 도시 레닌광장의 오페라하우스 특별 야외무대다. 도시 중심의 광장인 만큼 날씨만 좋으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리의 숙소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가장 번화한 기차역 앞에 있는 노보시비르스크 호텔이었다. 이 도시 건물 가운데서는 드물게 높은 빌딩이다. 덕분에 호텔방에서 노보시비리스크 시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기차 레인만 20개가 넘는 대규모 역과 고풍스러운 역전 건물 너머로 펼쳐지는 강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해가 질 때쯤 펼쳐지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작가를 낳은 러시아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풍경이 문학과는 거리가 먼 나까지도 감상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벌써 러시아에 온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내일 시범에 앞서 노보시비르스크 전자기술대학에서 겨루기 세미나가 있었다. 노보시비르스크태권도협회는 많은 학생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말고사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많은 학생이 참석하지는 못해 아쉬워했다. 그래도 세미나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이번에도 역시 하바로프스크에서처럼 열정적이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시간 가는 것도 잊은 채 진행되었다.

특별히 이번 세미나에는 수련생들보다 우리 단원들이 더 신나 했다. 아마도 세미나 인원이 적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 시범이 있어서 컨디션 조절을 위해 적당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들 내일의 시범을 잊은 듯 최선을 다해 러시아 태권도 수련생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세미나 후에는 내일 우리가 시범을 할 장소인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앙의 레닌광장을 찾았다. 광장 정중앙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 정문 앞에 설치된 특설 야외무대에서 내일 시범이 있다.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설치된 특설 무대는 벌써부터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일 시범이 기대된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 시범 날.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다. 오늘 마지막 시범에 행여나 흐리거나 비가 올까하는 걱정에서였다. 다행히도 날씨는 맑음 이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리허설을 하기 위해 우리는 레닌광장으로 이동했다. 야외 특설무대는 이미 완성이 되었고 시범은 시작도 않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야외 특설무대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무대시범이라 입·퇴장 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져서 시범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시범을 대기하고 있는데 단장님께서 단원들의 헤이해진 모습에 따끔하게 한 말씀을 하셨다. 아무래도 야외 시범이라 따로 대기실이 없었기 때문에 단원들이 시범준비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가 자칫 자신의 페이스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단장님께서 적절한 방법으로 단원들의 느슨해진 끈을 조인 것이다. 단원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풀며 자신의 페이스를 찾았다.

드디어 우리시범에 앞서 퓨전국악팀 미지의 공연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무대 옆에서 긴장한 채 우리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합소리와 송판 깨지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관중들의 호응도 광장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맞물려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원들도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힘을 북돋아 주고 있었다. 행여나 격파에서 실수가 나오면 격파자보다도 보조자들이 더 아쉬워했고 격파자 못지않게 자신이 잡은 송판이 꼭 깨져야 한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시범에 있어서 얼마나 책임감 있고 힘이 되는 모습인지 모른다. <계속>

강동권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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