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과 미흡한 리허설에도 성공적 시범 보여

하바로프스크의 아무르 강변 시범 후에는 공원 내 체육관에서 겨루기 세미나가 있었다. 태권도 종주국에서 온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쩌면 시범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한 것 같다. 세미나에 참석한 현지 사범들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감에 모두들 들떠 있었다. 특별히 그 중 딱 봐도 60은 족히 넘긴 두 노신사가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 시범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장면

흰 도복에 빨간 띠를 매고 있는 그들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열정은 더 놀라웠다. 얼마나 열심히 단장님의 겨루기 세미나에 귀를 기울이는지 비록 몸은 잘 따라주지 않았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밝게 빛났다. 그들은 겨루기 도중 발을 부딪쳐 부상을 입고 넘어졌지만 내가 도와주려고 다가서자 태연하게, 당당하게 스스로 일어섰다. 그 기세에 눌려 괜찮으냐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두 노신사를 보면서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배우는 것이 태권도 수련생의 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수련생들의 열기에 단장님도 힘이 나신 듯 애초에 약속했던 한 시간의 세미나 시간을 훌쩍 넘겨 두 시간 가까이 진행하셨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잊고 열심히 가르치는 단장님, 그리고 다치고 쓰러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서는 수련생들이 만들어낸 정말 열정적이고 뜨거운 겨루기 세미나였다. 비록 언어는 시원하게 통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태권도라는 공통의 언어로 마음을 나누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우리는 호텔에서 약간의 휴식을 가진 뒤 퓨전국악팀 미지의 첫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공연 모습에 우리 단원들은 열광했다. 러시아에 울려 퍼진 국악기의 애절하고도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선율에 러시아 현지인들도 미지라는 팀 이름처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듯 했다. 공연을 보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케 되었다.

내일은 드디어 첫 메인 시범이 있는 날이다. 다들 많은 준비를 했기에 잘해 주리라 믿는다.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첫 시범의 날이 밝았다. 시범 시작 4시간 전에 가진 리허설이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단원들은 조금씩 삐걱거렸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거기에 막내 이태한 단원이 허벅지 뒤쪽 대퇴이두근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태한 단원이 빠지면 여태 맞춰온 시범의 많은 부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침체되었고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정신없이 이태한 단원의 빈자리를 메우는 사이에 어느덧 시범 시작 시간이 되었고 관중들이 체육관을 메우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어느새 체육관 한 쪽 면을 가득 채웠다. 본격적으로 시범이 시작돼 우리는 삐걱거렸던 리허설의 부담감을 가지고 시범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흡했던 리허설 덕분에 단원들 모두 리허설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게 됐다.

우리의 기량이 단 두세 시간 만에 좋아질 리가 없지만 분명 단원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이 달라졌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 의식과 노력이 분명 리허설보다는 좋은 시범을 만들어냈고 관중 또한 우리의 시범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사실 이태한 단원의 마음은 많이 무거웠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상이었지만 재능이 많아 많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그의 부상으로 인한 빈자리도 매우 컸다. 아마 본인은 자기 하나 때문에 시범을 망쳐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계속>

 

강동권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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