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돌이 되기를 기원       

이병석  • 1964년생  • 1986년 미국 이민    • 미드웨스트대학 태권도 지도교수  •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겸임교수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이 세상 끝에서 저 하늘 끝까지”

노랫말처럼 구르는 돌멩이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어떠한 험난한 고생이 닥칠지라도 의연하게 세상을 향해 구르는 그러한 돌멩이가 되고, 쓸모 있는 돌멩이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모퉁이 돌이 되게 하소서…

처음 미국이란 곳에 간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많이 망설였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전날 잠을 설쳤다. 하지만 막상 이제는 떠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새로운 각오로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로 내가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비행기 안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떠나는 비행기는 의외로 그리 많은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다. 행선지는 일본 동경을 거쳐 시카고로 입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는 워싱턴 내서널 에어포트(National Airport, 현 Ronald Reagan Airport)의 형님이 계시는 곳이었다.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의 중간 좌석에 앉았던 나는 일본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개를 쭉 내밀어 창밖을 보고자 했다. 그때 나에게 손짓하는 외국인이 있었다. 자기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아래 내려다보이는 것이 후지산이며 동경의 모습도 멀리 보인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한국어에 능통한 그러한 미국인이었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에게 미국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지 16년이 되어 이제는 한국어에 어느 정도 능통하게 되었다며, 자신이 가지고 가는 상자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김치였다. 그는 김치를 좋아하는 그러한 마국인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이면 그 김치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와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미국에 살려고 가는 이상 이방인처럼 살지 말고 미국인처럼 살라는 것이었다. 아니 미국인 중에 미국인이 되어 살라는 것이었다. 미국인의 주류사회에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그들처럼 살라는 것이었다. 추종자(follower)가 아니라 리더(leader)가 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김치가 좋은 남자, 그래서 그 김치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자 하는 남자, 그는 이미 한국인이었다. 한국의 주류 사회에 들어와 한국인과 더불어 한국인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나도 미국에 가서 한국인처럼 살지 말고, 미국인처럼 살자.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그들과 대등하게 살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미국을 향하여 날아갔다.

미국에 도착해서
내가 미국 시카고 오헤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비행기 출구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청사로 건너갔다. 쌀쌀한 시카고 날씨와 많지 않지만 흩날리는 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출발하여 같은 날 오후(시간차 때문)에 공항에 도착하는 나를  환영하여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다시 공항에 도착하면서 또 기도했다. “나로 돌멩이 되게 하소서. 세상에 쓸모 있는 모퉁이 돌이 되게 하소서…”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입국 수속이었다. 처음 미국이란 곳에 오는 나에게 입국 수속을 하는 일이란 두렵고 떨리는 작업이었다. 일반적으로 먼저 짐을 찾아 세관 통과를 하고,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짐을 다시 부치고 재수속을 해야 하는데, 아마도 우리는 그 때 수속하는 데만 급급해서인지 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종착지인 워싱턴 내셔널 에어포트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보냈던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뭘 몰라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듯하다.

그래서 짐을 되찾기 위해 공항에 주소를 알려주고 형님 댁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 시카고에 내리던 눈은 어디로 가고 워싱턴 지역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그 지역에 폭우가 내려 일부 길이 유실되고 가옥이 침수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캄캄한 밤에 공항을 빠져 나와 약 한 시간 정도 가니 형님이 사시는 버지니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숲속에 위치한 아름다운 타운홈(Town Home; 연립주택)이었다. 그곳에 며칠 있으면서 그 근처만 다니다 보니, 큰 건물을 보지 못해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는 고층 건물이 없는 줄만 알았다. 고작 볼 수 있었던 것이 1~2층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 2008년 도장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한국문화엑스포’ 행사가 지역신문에 소개됐다.

태권도 재교육
그때 당시 난 한국에서 태권도를 오랫동안 해 왔었다. 그리고 일선에서 태권도를 가르쳐 왔었다. 처음에 미국에 온 것은 이민으로 오긴 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부가 여의치 않아 뒤로 미루고 일단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형님이 이미 미국에 와서 도장을 일구어놓으신 지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이미 성공적인 도장을 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형님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장에서 운동하는 것, 가르치는 요령을 다시 배워야 했다. 형님은 이제 미국에 왔으니, 그리고 형님 도장에 왔으니 형님 도장에 맞는 태권도를 배워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3개월 동안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학생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영어 공부, 광고지 배포, 그리고 도장 교수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3개월여 만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로 앞에서 가르치는 단계가 아니라 뒤에서 하는 보조 사범의 역할이었다. 매 수업시간에는 약 4~5명의 보조 사범이 함께 일을 하는데 나는 그 한 자리에서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나보다 어린 미국인 사범들이거나 또는 나보다 한참 나이가 더 많은 아저씨 사범들과 보조를 맞추어 수업을 배워 나갔다. 그리고 1년의 수련과정이 있고서야 나에게 수업이 맡겨졌다. 하루에 한 시간씩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시간은 보조로 들어가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매 시간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업을 가르쳤는데 내 수업시간에 가장 적은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그 이유를 몰랐다. 다른 사범들에 비해서 별반 뒤질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내 수업의 수련생 출석률은 언제나 저조하였다.

이병석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병석
• tkd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