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이 사범의 최고 덕목

"The master is patient. This too is a virtue of true mastery. Again and again he shows the correct technique to his students."

이때쯤 사범은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면 애당초 도장을 낸 것을 후회하게 된다. 아뿔싸, 아버지의 말이나 듣고 가족이 운영하는 피자 가게나 물려받을 걸. 피자 위의 재료는 쉐프(chef: 요리사)가 놓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태권도 수련생들은 왜 그렇게 움직여대는가). 아이고,  내가 왜 태권도 사범이 되어 가지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운명(Karma: 業)이니까. 아마 전생(前生)에 나는 작은 동물을 고문했거나 대량 학살자(mass murderer)였나 보다. 그래서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거다. 수련생들은 사범을 많은 기대와 함께 바라본다. 사범이 명령만 내리면 무시할 준비를 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사범을 쳐다보고 있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을 사범은 알고 있다. 수련생들의 눈을 주시해 보면 눈과 두뇌 사이에는 동작을 제어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없다. 수련생의 손과 발이 각각 두 개씩 밖에 없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수학적으로 볼 때 잘못된 움직임이 나올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생들은 곧 이러한 수학법칙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동작들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몸은 아주 많은 근육, 뼈, 관절로 구성되어 있어, 여러 모양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재주가 좋은 수련생들은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 생각해보지 않은 움직임까지 만들어내니까 문제다.

사범에게는 ‘인내심’이라는 무기가 있다. 인내심이야말로 사범의 ‘최고의 덕목’이 된다.  사범은 반복해서 수련생들에게 올바른 기술 동작을 가르쳐준다. ‘오른 다리는 한 발 앞으로, 왼쪽 주먹은 똑바로 지르고.’ 수련생들은 일제히 움직인다. 한 명은 오른 손에 경련이 온 것처럼 떤다. 또 한 명은 유난히 뻣뻣하게 서 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모른 체. 그 옆에 있는 수련생은 발을 앞으로 내딛기는 했는데 반대 발을 내디뎠다. 덕분에 앞 사람 잔등을 주먹으로 때렸다. 불쌍하게도 맞은 사람은 큰 목소리로 뭐라고 항의한다. 마지막 줄에 서 있는 재주 많은 수련생은 앞뒤, 양 옆 사람을 모두 때린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먹으로 자기 코를 때린다. 사범은 참으로 이런 놀라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사범은 열심히 ‘하나, 둘’ ‘하나, 둘’ 리듬을 넣어 구령을 하고 있다. 수련생들은 ‘좀비 떼거리’(a horde of zombies)가 도장 안을 비틀거리며 걷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제 수련 시작한 지 20분도 안 지났는데. 아직 40분이 남았다. 사범은 그동안 있었던 잘못된 일들을 생각한다. 지난 주 한 수련생은 자신의 작은 발가락을 분지르는 데 성공했다. 겨루기 시간도 아니고, 누가 발을 밟은 것도 아닌데 그냥 혼자서 분질러 먹었다. 어떤 수련생들은 매일 배운 것을 반복하는 학습 시간에도 꼭 다친다. 안 다치는 날이 있다면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과 같다.

그러나 자연은 강하다. 다윈(Darwin)은 ‘동화하는 것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 (He who adapts passes on his genes)라고 했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학생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사범은 기쁘게 자신의 고통을 감수한다. 가끔 수련생이 발 하나, 손 하나를 비슷하게라도 움직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범은 질세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칭찬을 해댄다. 그러면 그 수련생 얼굴에 나타난 자랑스러운 모습은 많은 것을 보상해주며, 사범은 피자 가게 생각을 잊게 된다.

마침내 가장 어려운 수련 시간이 다가왔다. 품새 시간이다. 품새, 특히 여덟 개의 태극 품새는 「역경」에 나오는 여덟 개의 도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보자의 품새는 대략 20개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작들은 거울에 비춘 모습과 같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품새 하나에 많아봐야 열 가지 기술만 알면 된다. 열 가지 기술이다. 열 가지! 품새 연습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과 같고, 모든 원리에 알맞은 해결 방안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무임 승차자의 은하수로 가는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삶,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질문’(the Ultimate Question of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에 대한 답은 ‘42’라는 숫자에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품새 ‘태극 1장’ 동작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러니 이러한 수련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범은 참 불쌍하다.
 

노베르트 모쉬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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