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은 세계 최강의 실전무술인 극진가라테를 세워 일본 무도인의 정점에 올랐고 고우영 만화를 통해 초창기 태권도의 보급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1970년대 최배달의 활약상을 묘사한 수많은 국내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에서 그의 무술은 극진공수도가 아닌 ‘태권도’란 이름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또한 당시 시중에 태권도 교본으로 나온 여러 책들도 최배달의 공수도 서적들이 무술 명칭만 바뀌어 출판되었다. 역설적으로 최배달의 공수도 저작물들은 자신의 무술 극진가라테가 아닌 우리의 태권도를 활성화시킨 촉매재로 작용했다.
한 서적에서 그의 아들이 언급한 대목이다. “무술인으로서 일본에서 이름을 떨친 것과 비교한다면, 특히 생전에 한국에서의 아버지와 극진가라테의 명성은 미미한 편이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스스로 한국에 극진가라테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당시 어떤 일본 문화든지 한국에서 발붙일 사회적 분위기도 아니었고 배달 또한 이미 가라테로 편입된 자신의 무술이 국내에서 방해되는 대상이 되는 것을 꺼려했다. 오히려 조국의 무술인 태권도가 한시바삐 기반을 닦도록 널리 알리는데 적극 협조했다. 배달의 동의 하에 고우영은 만화를 통해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각종 무술을 격파한 배달의 격투기가 바로 ‘태권도’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전개했다.
태권도를 위해 배달이 기여한 또 다른 일은 올림픽에 진출하고자 하는 일본 가라테의 통합이 지연되었던 일화로 전해진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극진류 경기 방식을 배제한 어떤 가라테 룰도 올림픽에 채택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올림픽 진출을 위한 가라테 경기규칙으로 전통 방식의 오키나와 가라테는 여러 가지면에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 사이 시간을 확보한 태권도는 국제적 경기로서 급속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마침내 배달이 작고한지 6년이 지난 2000년에 태권도가 올림픽에 채택됨으로써 일본 가라테를 누른 한판 승리를 연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최근 가라테가 올림픽 채택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소식을 접하면 더욱 실감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배달과 얽힌 이같은 일화들과 관련해 태권도인으로서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일단은 한국 태권도의 성장 발달에 기여한 그의 역할에 무조건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적지에 들어가서 아군을 도와준 우군과도 같은 존재였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뒤늦게 출범한 일개 무예 단체가 막강한 가라테의 아성을 누르고 올림픽 종목이 되고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지금의 태권도가 될 줄이야... 일본 입지를 어렵게 하고 조국을 위한 진정한 애국적 행위를 했다고 하면 너무 단편적이고 비약적인 착상일까.
그러나 이제는 배달 측으로부터 더 이상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태권도는 근래에 유입된 극진공수와 어울려 냉정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태권도 경쟁 도장으로 등장한 극진공수는 방학기의 만화에 이어 2004년 ‘바람의 파이터’ 영화로 도약 기회를 맞았다. 전국에 지부가 설립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렬히 극진류를 연마하며 심신을 닦고 있다. 극진류는 어른들의 관심을 끄는 기품 있는 심신수양의 무도이자 최강의 실전 격투기로서 호신술적 유용성이 장점이다.
배달의 무술 편력과 사상은 태권도의 본질과 향방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린이 체육관이 된 일선 태권도장과 겨루기 위주로 젊은 선수들의 전유물인 태권도 경기의 현 추세에 대해 본질적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흘렀고 비록 그의 무술이 일본 가라테로 표방되고 있지만 인간의 최고 경지를 구가했던 배달의 기예와 각고의 정신력은 아직도 의미심장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김영선 tkd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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